하울의 움직이는 성(ハウルの動く城, 2004)
글: 김승환
2005년 01월 06일
 |
그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세계는 언제나 비슷합니다. 마법과 과학이 공존하고 명백한 악도, 선도 없어요. 캐릭터들은 자기 욕심과 이기심으로 남을 해코지하지만 캐릭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만큼 무서운 집념에 사로잡힌 캐릭터들은 없습니다. 즉, 언제고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최소한의 이성은 남겨두고 있는 세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것이 하야오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 세계인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 세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명 이 세상과 닮아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세상도 세상에 대한 불신을 마냥 뱉어내기엔 곳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이성과 양심이 결코 만만치 않은 양과 질을 드러내거든요.
어쨌든 바로 그런 세상에서 하야오의 캐릭터들은 언제나 하늘을 날고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이리 저리 뛰어다닙니다. 자신감, 미래, 지위, 자유, 순수, 젊음, 가족... 그것을 일본 애니에서 흔히 나타나는 자신의 정체성 탐구와 연결시켜도 좋고 그냥 그 자체로 봐도 무방할 듯하군요.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번 애니는 전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보다 정체성과 연결고리가 그리 탄탄하지만은 않으니까 말이에요. 오히려 이 애니메이션은 '함께'라는 단어에 더욱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 듭니다. 우정이 아닌 사랑이란 감정이 등장한 것도 그렇고, 황야 마녀와 하울, 소피, 마르클, 힌 등 다양한 세대가 가족을 구성하듯 한 집에서 생활을 하는 것도 조화와 화합의 의미를 일깨우죠.
그런데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어쩐지 이 애니메이션은 감독이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위안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이제 6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이,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에선 최정상에 오른 몸, 작품이 나올 때마다 은퇴 얘기가 언급되지만 계속 다시 등장해 기록을 깨어나가는 성공 가도... 그 과정에서 오는 은근한 불안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느껴진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이 될까요? 그의 상상력은 여전히 건재해 보이지만 직접 창작을 담당하는 자신은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지 모릅니다. 소피가 자신의 외모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것처럼요. 늘어만 가는 관객 수에 따라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지도 모릅니다. 계약과 자유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하울처럼, 그리고 저주에 의해 허수아비가 된 무대가리처럼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노쇠함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을지도 모릅니다. 캑캑거리고 볼품없지만 엄청난 무게감을 지닌 힌과 자신감을 잃을 때마다 늙어버리는 소피와 심장에 집착하는 황야 마녀처럼요.
만약 이 모든 캐릭터들이 자신에 대한 위안과 불안을 반영한다면 동시에 그것은 자신에 대한 다짐과 희망이 되기도 할 겁니다. 소피를 비롯한 모든 캐릭터들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냈으니까요. 과연 다음 작품에서도 거장의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을까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선보인 캐릭터들을 보건데 그의 상상력은 여전히 활화산처럼 활발합니다. 매너리즘이란 덫만 조심한다면 그의 세상은 여전히 이어질 듯싶군요(이미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그러기엔 그의 캐릭터들은 너무 생동감이 넘칩니다).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