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2004)
글: 김승환
2004년 09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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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머니란 존재에 무척이나 약합니다. 아니, 어쩌면 모든 남자는 어머니에게 약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딸들이 때론 결혼식장에서 아버지를 붙잡고 우는 것처럼요.
특히나 늦둥이로 태어나 연세가 지긋하신 어머니를 둔 자식들은 어머니에 대해 특히나 각별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변해간다지만 세월을 이기지 못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그 변화가 안타까운 경우도 없고 가슴 저리게 하는 경우도 없거든요. 신체적인 노쇠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당당하게 밖에 나가 세상을 가르치셨던 분이 이제는 자식이 없으면 공과금 처리하는 것도 버거워하세요. 노인네들이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 분들을 주저하게 하는 건 복잡한 세상이 아니라 줄어든 자신감입니다. 변한 건 그것만이 아니에요. 매일같이 TV를 켜 놓은 채 주무시고, 손맛이 떨어져 음식 간은 짜지기 일쑤죠. 이런 변화를 감지할 때마다 '내 곁에 언제까지고 계셔야 하는데...'라는 불안감이 스치고 지나가는 게 저 혼자만의 일일까요?
하지만 그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정성이 그것이죠. 새벽같이 아침을 챙겨주시고 객지에 나간 자식들을 위해 그 무거운 반찬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원정에 나서시는 어머니의 사랑은 도대체가 불가사의한 현상입니다. 그런 어머니께 난 도대체 해 드린 게 무엇인지…….
사설이 길었지만 나름대로 그에 대한 변명을 해보자면 이 영화는 전적으로 사제 관계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관악부 교사 현우(최민식)와 관악부원들 간의 이야기가 큰 뼈대를 이루고는 있으나, 이 영화는 현우의 꿈과 현실을 다룬 영화에요. 그 와중에서 자연스럽게 현우와 어머니(윤여정)의 관계, 현우와 재일 할머니(김영옥)의 관계가 비춰지는데 그 세세함이 너무나 생생했던 탓에 더욱 가슴을 아리게 했던 거죠.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은 영화를 통해서 저 혼자만이 공감하는 소재는 아닐 겁니다. 더더구나 그것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담고 있는 생각과 동떨어진 것도 절대 아니구요. 어머니의 존재는 평상시엔 잘 모르다가 어느 순간 그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곤 합니다. 보통 때엔 잊고 살면서 가끔씩 그 존재를 들춰내지만 따지고 보면 언제나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게 어머니에요.
그런데 이 영화에는 그런 것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사진, 꿈, 옛 명성, 옛 사랑, 옛 집... 사진은 언제나 과거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어린 시절 꿈은 그것을 못 이룬 사람에겐 특히나 아릿한 어떤 것으로 남게 마련입니다.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명성은 후배들에겐 자랑인 동시에 은근한 부담이고, 옛 사랑은 잊은 듯하지만 언제나 되살아나는 아픈 추억이며, 정든 옛 집 역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우리 마음 한 켠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대상입니다. 잊은 듯, 모른 듯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리워하는 것들... 꽃피는 봄이 오면 누구나 그 그리움을 풀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꽃피는 봄이 오면>은 그런 희망을 잔뜩 담고 있는 영화에요. 넉넉한 최민식의 연기와 귓가를 감도는 음악과 감독의 담백한 연출이 어우러진 영화. 특별한 것도 없지만 그래서 익숙하고 반가운 영화. 바로 <꽃피는 봄이 오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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