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이즈코미디(Sex is comedy, 2002)
글: 김승환
2004년 09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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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이 여성 감독으로서 촬영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 힘들었던 점들, 자신의 도발적인 영화를 평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생각 등을 복합적으로 담고 있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감독과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고, 촬영장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남자 배우들과 보이지 않는 파워게임에 시달리고, 영화의 완성도에 시달리고, 예상치 못한 각종 돌발 문제에 시달리는, 독특한 위치의 여성 감독의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동시에 영화는 남성들의 생각을 은근히 비꼬기도 합니다. 시종일관 감독의 맘에 들지 않는 연기를 펼쳤던 남자 배우(그레그와르 꼴렝)가 거대 페니스를 부착하고서야 빛을 발하는 장면에선 남성들의 마초적 근성을 다룹니다. 남성들의 자신감이 인격이나 능력이 아닌 페니스에서, 그것도 성기의 거대함에서 나온다는 사실. 이 얼마나 원초적이고 속된 근성인가요. 들이민다는 자신의 공격적 성향을 더욱 두드러지게 할 거대함이란 마초적 특성이 문명의 테두리 안에서도 남성들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셈입니다.
성에 관한 남성들의 생각을 나타내는 장면은 여기서 그치지 않네요. 잔느(안느 빠릴로)와 스텝 간의 대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얼굴만 보고 남자 배우를 뽑아 놓고서 그 남자 배우의 연기를 탓하는 건 옳지 않다고 하는 내용.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우를 인격이 배제된 물건으로 다룬다는 내용. 이 얘기는 잔느가 베드신을 찍는 남자 배우의 연기를 탓하며 몰아세우자 옆에 있던 스텝이 잔느에게 한 말입니다. 비록 이 말이 이 영화에서만큼은 여성 감독에게 방향을 향하고 있으나, 여성보다는 남성 감독이 많은 현실에선,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관음증의 대상이 되는 육체(존재가 아닌 말 그대로 살덩어리)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현실에선 그 방향은 남성들에게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격이 사라지고 욕망과 파편의 덩어리로만 사람을 묘사하는 건 남성들이 세워놓은 전통이며, 그 전통의 제물은 여성들이라는 얘기겠죠.
<섹스이즈코미디>는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여전히 도발적이고 공격적입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촬영 현장의 현실(물론 이마저도 영화적 현실에 불과하겠지만)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약간의 웃음을 선사한다는 점이에요. 포근하고 따뜻한 장면을 찍기 위해 추운 날씨 속에서 서서히 얼어가는 엑스트라들,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베드씬 내내 쏟아지는 감독의 지시와 질책... 스크린과 그 이면에 도사린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진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촬영 현장의 모습만 그런 건 아닙니다. 부착한 거대 페니스 안에서 남자 배우의 실제 페니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며, 잔느에게 향하는 비난도 현실에선 남성들을 향한 비난입니다. 확실히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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