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다 대굴대굴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赤い橋の下のぬるい水)


글: 김승환
2004년 04월 22일


1. 몸에 차오르는... 물

타로(기타무라 카즈오)는 요우스케(야쿠쇼 코지)에게 '보물을 넣어둔 단지'를 어떤 집에 숨겨놓았다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실직자인 요우스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난 타로의 그 말을 믿고 붉은 다리 옆에 있는 집을 찾아가는군요. 그런데 그 곳에서 요우스케는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집에 사는 사에코(시미즈 미사)란 여성과 느닷없이 정사를 벌이게 된 것이죠. 이 정도만 해도 사실 유부남인 요우스케에게 뜻밖의 경험이긴 합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건 이 여자, 중간 중간 분수처럼 물을 뿜어내요. 사에코 왈, 자기 몸엔 시간이 지나면 물이 차오른답니다. 그 사실을 안 요우스케, 엉겁결에 약속을 해 버리고 말죠. 물을 빼낼 때가 되면 자기한테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2. 물은 생명이다 그리고...

요우스케는 가족을 놔둔 채 어부가 되어 마을에 눌러 앉습니다. 그리고 사에코에게 연락이 오면 그는 만사 제쳐두고 그녀에게 달려가 물 빼는 작업(?)에 착수해요. 그러던 어느 날 둘은 밖으로 나들이를 가는데 그 나들이의 주요 테마는 물입니다. 우주에서 온 어떤 물질을 걸러내 준다는 물을 보기도 하고, 카드뮴에 오염된 적이 있었던 강가에서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렇듯 영화 내내 등장하는 물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일반적으로 물은 생명입니다(많이 들어본 문구네요...). 임신한 여성 몸속의 양수, 각종 생명체의 삶의 터전인 강물과 바다 등 분명 물은 생명이죠. 게다가 태아를 보호하는 양수는 분만할 때 태아가 나오는 길의 불순물을 씻어 내주며, 강물과 바다 역시 자체적으로 불순물을 정화시킵니다.

그래서 물을 통해 걸러져 나온 결과물들은 순수합니다. '순수'라는 단어가 부담스럽다면 '원시적'이라는 표현도 괜찮겠네요. 결국 물을 매개로 한 요우스케와 사에코의 정사,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이끌어져 나온 그들의 감정은 원시적인, 있는 그대로의 감정인 셈입니다.


3. 일어설 때 즐겨라

하루 이틀 사에코와의 생활에 익숙해져가던 그의 머리 속에는 과거 타로가 했던 말이 들려옵니다. '일어설 때 즐겨라. 난 돌아가고 싶어도 이젠 늦었다.'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억누르지만 말고 자유 의지에 따라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걸 쉽게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사회 조직, 각종 의무감, 돈 등은 사람으로 하여금 언제나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게 만들었죠. 그런 면에서 봤을 때 폐수로 오염된 강물이란 순수한 사람의 감정을 왜곡하고 억누르는 현상에 대한 비유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왜곡과 억제는 때론 사람을 질식시킬 정도로 사람을 옥죄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21세기라고 해서 결코 변할 리 없습니다.

'일어설 때 즐겨라'라는 타로의 말에 반신반의하던 요우스케에게 그의 태도를 분명히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들이 하나씩 벌어지게 됩니다. 아내의 이혼 통보, 과거 마을에서 벌어졌던 사건들과의 연계, 그리고 갈수록 양이 줄어드는 사에코 몸속의 물. 이것들이 한데 모여 요우스케는 사에코와의 관계, 사에코의 감정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의심의 끝에서 요우스케는 '단지에 든 보물'의 실체와 타로가 의도했던 바를 알게 되죠.


4. 내키는 대로 살아라?

대답부터 해야겠군요. 아닙니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말고 자유의지에 따라 감정에 충실하게 살라고 해서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건 아니에요. 이 영화에서 요우스케가 부인을 놔두고 사에코와 바람을 피우는 건 달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 사이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의 감정이죠. 형식이 아닌 내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고의적으로 설명을 누락시킴으로써 요우스케의 가족 관계가 형식에 치우쳐 있음을 암시합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은 실종된 채 의무감만 남아있는, 균형감이 상실된 가족 관계라고 할까요. 그러므로 그 같은 가족 관계는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유지될 필요가 없다는 게 이 영화의 관점인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해보면, 영화는 크게 두 가지를 얘기하는 거 같아요. '물'이란 소재를 이용해 사람들의 순수한 감정을, '일어설 때 즐겨라'라는 말을 통해 자유의지에 따른 감정에 충실한 삶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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