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키스만 50번째(50 First Dates, 2004)
글: 김승환
2004년 04월 15일
 |
1. 2000년 <빅대디>
어떻게 된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빅대디>란 비디오테이프를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경품이었던 거 같아요. 그리 끌리진 않았지만 이왕 있는 거 보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었죠. 그리고 20여분 후. 정지 버튼을 누르고 비디오를 책꽂이에 꽂아둔 채 전 다른 일을 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영화 보기를 중간에 포기한 건 <빅대디> 하나 뿐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담 샌들러와의 첫 대면은 그렇게 끝이 났어요.
2. 2002년 <미스터디즈>
이번엔 영화 시사회였어요. 아담 샌들러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볼까 말까 무척이나 고민했었지만 공짜라는데 혹해서 발길을 떼었습니다. 큰 화면에 군중 심리까지 가세했던 탓이었을까요? 그의 유치한 유머가 이번엔 어느 정도 먹혀들었죠. 돈 주고 볼 사람은 많지 않을 듯 했지만 영화 보는 순간만큼은 즐거웠습니다. 애초에 큰 걸 기대하고 간 게 아니어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어쨌든 아담 샌들러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이 다소간 희석될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3. 2004년 <첫키스만 50번째>
시간이 흐르면 모든 감정이 옅어지는 걸까요? 아니,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전 잘 압니다. 하지만 아담 샌들러에 대한 좋지 않던 인상은 분명 많이 없어졌습니다. 어쩌면 없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좋게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가 나오는 영화는 영화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언제나 비슷비슷한 경향이 있어요. 스토리 자체는 약간 억지스럽고 말이 안 되는 설정이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아담 샌들러가 맡은 캐릭터는 언제나 어수룩하고 기본적으론 착한 인물이구요.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전개 역시 뻔합니다. 억지와 어수룩함은 스토리상에서 어울려 웃음을 이끌어내고 착한 성품은 넉넉한 인간미를 풍기면서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이끌어 나갑니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코미디란 장르를 통해 현실에선 불가능한 판타지를 우리 눈앞에 펼쳐낸 것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것을 스크린에 그려줌으로써 현실에선 그것들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준다고나 할까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이 영화 역시 비슷한 길을 갑니다. 헨리(아담 샌들러)란 인물에서 어수룩함이란 요소가 많이 걷혀지긴 했지만 나머지 부분은 앞서 적은 유형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거든요. 헨리가 루시(드류 베리모어)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들어가는 작업은 보는 이를 웃게 만들고, 루시를 배려하는 가족들과 헨리의 마음 씀씀이는 결과적으로 풋풋한 인간미를 느끼게 해 줍니다. 결국 이 영화는 영락없는 아담 샌들러의 영화인 셈이에요.
4. 2002년 <펀치드렁크러브>
사실 아담 샌들러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된 가장 결정적 계기가 바로 <펀치드렁크러브>란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아담 샌들러는 무언가에 억눌린 듯한 캐릭터로 등장해 뜻밖의 연기를 선보이죠. 하지만 <펀치드렁크러브>는 아담 샌들러의 영화라기보다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역량이 크게 작용한 영화에요. 반면 <첫키스만 50번째>는 분명 아담 샌들러의 영화죠.
그의 영화를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사람을 꽤나 당황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2~3편 봐서 길들여진 상태라면 이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거에요. 어쩌면 아담 샌들러가 좋아지려 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맞닥뜨릴 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