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더 이상 영화의 변방이 아니다. 흥행에 대한 부담을 덜어서인지 한껏 자유롭고 톡톡튀는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인터넷을 통해 선보이고 잇는 세 편의 디지털 단편영화의 주연 배우를 만났다.

디지털, 그리고 재능 있는 젊은 감독 세 사람이 만들어낸 인터넷 단편영화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다. 인터넷 사이트 씨네포엠(www.cine4m.com)을 통해 무료로 상영되고 있는 세 편의 디지털 단편 프로젝트 <커밍 아웃>(김지운 감독) <극단적 하루>(장진(A) 감독) <다찌마와 Lee>(류승완 감독)가 바로 그 주인공들, 지난해 8월 7일, 9월 21일, 12월 12일 각각 개봉돼 장기 상영에 돌입한 이 작품들은 2월 중순을 기준으로 3백만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으며 여전히 선전중이다.

특히나 <다찌마와 Lee>의 경우엔 상영을 시작한 지 두 달 남짓 만에 129만이 넘는 관객을 받았으니 160일 만에 약 253만의 관객을 동원해 최다 관객 기록을 수립한 <공동경비구역 JSA>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주류에서 이미 상업영화로 인정받은 유명 감독들이 떼지어 인터넷으로 눈을 돌렸다는 것. 그리고 가속도가 붙고 있는 디지털 열풍 등이 이런 놀라운 기록 수립에 한 몫 거든 듯싶다. 어쨌거나 이런 경이로운 성과에 힘입어 특수를 누리는 건 비단 씨네포엠 사이트뿐만은 아니다. 감독들은 감독들대로 다시 한 번 재능을 확인하는 기회를 얻었고 출연 배우들 역시 인터넷이라는 틈새시장을 이용해 얼굴 도장을 확실히 찍고 있다. 새롭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각 영화의 주연 배우들을 만났다.

<다찌마와 LEE> 다찌마와 LEE 역 임원희

서울 인근 지역 올 로케, 일백푸로 후시 녹음.
<취권>의 성룡에서부터 성냥개비 물고 쌍권총 휘두르는 주윤발의 나와바리에 이르기까지, 키취 소년은 오늘도 액션의 바다에 몸을 담근다.

1970년생 임원희. 배우로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은 나이다. 물론 영화배우 임원희가 그렇다는 말이다. 연극배우 임원희라면 조금 얘기가 달라진다. 영화 데뷔작이었던 <기막힌 사내들>에 출연하기 전 그는 극단 목화에 소속돼 5년간 연극 무대에 올랐었다. 서울예대 연극과 1년 선배인 장진 감독과의 인연으로 영화를 시작해 <간첩 리철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공포 택시> 등에 출연했다. 그리고 주연을 맡은 이번 영화 <다찌마와 Lee>. "이제는 사내다운 삶을 살아야 할 게 아니냐."라는 대사까지 유행시킨 그는 다소 과장된 몸짓과 대사처리, 낡은 흑백필름에나 어울릴 법한 촌스러움을 듬뿍 담은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터넷이 아닌 일반 극장에서 상영된 상업영화였다면 짐작컨대, 그는 최고의 대접을 받는 A급 스타 반열에 성큼 진입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그는 아주 진득하게 배우로서 지니고 있는 자신만의 매력과 장점을 파급력 있는 속도로 알려가고 있는데. 본인도 인정하듯이 외모만 놓고 보자면 결코 잘생긴 배우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캐릭터다.

"예전부터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좌우명이 있습니다. 아, 그렇다고 벽에 떡하니 붙어 있는 그런 건 아니고... '치사하게 살지 말자'가 집안의 좌우명인데 이거 중요한 겁니다. 치사하게 살지 않으려면 자연히 착하고 온순하게 살게 되거든요. 그리고 긍정적으로 사는 게 제 인생관입니다. 물처럼 사는 것, 중용의 미덕을 갖춘 사람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저는 불처럼 강한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흐리멍텅한 건 싫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최민식 선배와 송강호 선배, 말론 브란도와 숀 펜인 걸 아시면 이해가 좀 되실 겁니다. 자기 색이 분명한 연기파 배우들이죠. 이들처럼 가슴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머리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하는 연기는 싫거든요. 책을 많이 읽고, 걸어다니며 사람들과 사물들을 관찰하길 좋아합니다. 여행도 좋아하고 아, 그리고 강아지도 좋아합니다."

<커밍 아웃> 송현주 역 구혜주

"저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입니다."
26년 동안 흡혈귀임을 숨기면서 살다가 자기 자신을 찾고 싶다며 정체를 밝히는 그녀의 노력은 흡사 코미디에 가까운데...

1980년생 구혜주. 그녀의 나이를 확인하는 순간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극중 신하균을 남동생으로 둔 그녀는 굉장히 성숙해 뵈는 외모와 농익은 연기로 단숨에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어림짐작 한 20대 후반쯤? 그런 그녀가 <커밍 아웃>에 출연한 배우들 중 가장 어리다니. 게다가 제대로 얼굴을 비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라니, 외외다.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한 그녀는 잠시 미술 쪽에 눈을 돌렸다가 이내 모델 활동을 시작한다. 그 뒤 오디션을 통해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 -그녀의 출연 장면은 그나마 편집과정에서 가위질 됐다-참여했고, 그 박엔 영상원 졸업 작품 두 편에 출연한 게 전부다.

그야말로 일천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을 통해 합류한 <커밍 아웃>에선 당당히 주연을 거머쥐었다. 그녀의 장점을 제대로 파악한 감독의 조율 덕분이었는지 그녀는 자신이 맡은 배역을 120% 근사하게 표현해냈고 이를 통해 새로운 연기 인생의 비상구를 발견하게 됐다. '원래가 흡혈귀같이 생겨서 오히려 재미없을 수도 있겠다'는 김지운 감독의 예상을 뒤엎고 그녀는 착한 학생처럼 외모와 달리 다소 푼수끼도 있으면서 털털하고 솔직한 자신만의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차기작을 기다리는 중이다.

"고두심 선배님 같은 배우도 좋아요. 뭐랄까 강하고 분명한데다 자기 것을 딱 가지고 있는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물론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잇고요. 음 그리고 후회없이 살고 싶어요. 얼마 전 TV에서 이런 말을 들었어요. '오늘이 내 인생의 첫날이자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자'는.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건 너무 싫어요."

<극단적 하루> 킬러 역 김대령

폼나는 킬러의 이면에 소심한 청년의 모습이 숨어있다.
파리 한 마리 죽이는 것도 겁을 내는 심약한 킬러지만 그의 상상속엔 늘 냉혈한 킬러가 꿈틀대고 있다.

1977년생 김대령. 소령, 중령, 대령의 그 대령? 한번 들으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은 개성 있는 이름을 지닌 그는, 역시나 한번 보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은 황당한 킬러 역을 매끄럽게 잘 소화해냈다.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지닌 김대령은 배우 이병헌을 연상시키는 '건치를 드러낸 건강한 웃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선사한다.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를 다니면서 시작한 연극 서클 활동을 통해 여러 선배들을 알게 된 것이 이번 영화에 출연 계기. <극단적 하루>가 영화 데뷔작이라고. 그래서인지 아직은 배우에 대한 어떤 환상도 간직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도 "멋있게 살고 싶은데, 배우만큼 멋진 직업은 없는 것 같다" 고 말하는 그가 철없어 보이기보다는 순수해 보이는 건 왜인지. 아마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음에도 성급하게 다음 작품에 대해 안달하지 않고 "아직은 때가 아니다. 조금 더 기본기를 착실히 쌓은 다음 다른 작품을 하고 싶다"고 덧붙이는 그의 진지한 어투가 믿음직스러워서가 아닐까.

"배우에 대한 꿈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은연중에, 남몰래 꿈꿔왔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부터는 드러내놓고 꿈꿨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방송대상 시상식장에서 대상을 받은 배우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아들한테 '아들아,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말하던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더군요. 하긴 그 전에 제 게으른 습성부터 고쳐야 할 것 같네요. 생각하는 것들에 모두 도전해보고 또 성취하고 싶습니다. 우선은 저의 영원한 스폰서이자 팬인 가족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꿈입니다."

(*이 글은 월간지 [프리미어] 2001년 3월호에 실린 글을 '씨네포엠'에서 제공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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