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가 뉴욕여성영화방송인협회가 뽑은 '세계여성영화 25편' 중 하나로 선정되어 뉴욕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페니 마샬, 수잔 서랜든, 지나 롤랜드 등 뉴욕에서 가장 유력한 여성 영상인들이 만든 뉴욕여성영화방송인협회는 1978년 창립 이래 20여 년간 세계 여성감독들이 만든 작품중 25편을 선정,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7일까지 뉴욕 ‘밤 로즈 시네마’에서 상영했다. 영화제
에서는 제인 캠피온의 〈스위티〉, 〈안토니아스 라인〉의 마린 고리스 감독의 〈침묵에 대한 의문〉, 유잔 팔시의 〈사탕수수 길〉, 샐리 포터의 〈올랜도〉, 마가레트 폰 트로타의 〈로자 룩셈부르
크〉 등 예술적·정치적으로 주목받는 감독들과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여성감독의 초기작과 같이 세계 여성영화의 흐름을 선도했던 작품들이 상영되었다.

“작년 부산영화제 때 프랑스의 한 여성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낮은 목소리1〉이 세계여성영화 25편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리고 얼마전에 그 소식을 팩스로 받았는데, 할머니 한 분이 편찮으셔서 참석을 못했습니다. 〈낮은 목소리2〉를 찍을 때도 제가 잠깐 나가있을 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기억때문에 자리를 뜰 수가 없었어요.”


변영주 감독은 현재 〈낮은 목소리3〉인 〈숨결〉을 찍고 있다. 1,2 편이 정신대 할머니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은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라이프 스타일을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준다. 정신대 할머니들이 다른 정신대 할머니를 상대로 인터뷰하는 것이 변영주 감독적 색채가 묻어나는 대목. 이번 작품은 직접 촬영까지 맡았다.

"제 작업 스타일이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거든요. 사전에 얘기도 없고 24시간 스탠바이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할머니들 하시고 싶은대로 두었다가 ‘자 지금이야’하는 방식으로 촬영을 하니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많이 괴롭힘을 당했죠. 다큐멘터리에서는 ‘어느 순간’이 가장 중요한데, 직접 촬영을 하니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은 적어진 것 같아요.”


1,2편을 찍을 때와 3편을 찍는 지금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더 이상 외상으로 필름을 구할 수 없게된 것과 말도 안되는 루머들에 시달리게 된 것. 최근들어 부쩍 “변 감독, 이젠 돈 좀풀어야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단다. 또 영화 〈낮은 목소리〉 제작비를 의사인 아버지가 댔다는 뜬소문도 들린다. 사실 무근이지만 아버지는 “내가 돈을 댔어야 하나보다”하며 오히려 미안해 해 변 감독이 난처했다고. '스탭들 사기치고 돈 떼먹었다'는 소문도 변감독을 당혹스럽게 한다. 거의 무임금으로 일해주는 기록영화제작소 사람들의 노고를 우습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현재 촬영중인 〈숨결〉은 올 해 안으로 마무리지을 계획이지만 제작비때문에 여의치 않을 것 같다. 현재 변영주 감독이 대표로 있는 기록영화제작소 ‘보임’의 최대수입원은 일본과 외국. 일본에서는〈낮은 목소리〉 판권을 사들여 2백여 개 중소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얼마전 영국의 제인 발포 필름에서도 영화를 고가에 수입해 갔다. 한국에서는 수익이 전혀 없다. 얼마전 케이블TV에서 변 감독의 작품을 방영했지만 저작권이 보호되지 않은 국내 관행에서 판권을 사지 않고 복사한 테잎이 그대로 방영됐다.

변영주 감독은 무엇보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벌어지기를 희망한다. “다큐멘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져야 하고 볼 수 있는 공간도 늘어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작품도 꾸준히 나오게 마련이죠. 일본에서는 〈낮은 목소리〉에 대해 활발한 비평과 토론이 벌어지지만, 국내에서는 토론은 부재한 채 칭찬일변도인 것이 불만입니다. 객관적이고 다양한 평가가 결국 작품을 향상시키는 거름입니다.”

기록영화제작소 보임 (02)597-5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