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김대승 감독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은 홍석천을 비롯한 연예인들이 등장하여 김대승 감독과 수다를 떠는 '헬로닷TV'라는 인터넷 영화홍보사에서 제작한 <번지점프를 하다> 프로모션 클립을 인터넷으로 보고부터다. 굉장히 굳은 표정으로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는 그를 보면서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원래 저렇게 진지한걸까, 그러면 인터뷰도 딱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또 우연히 다른 기회에 여러 매체들에서 행해진 인터뷰를 보면서는 그저 상당히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구나, 라는 느낌을 가졌던 정도였다. 적어도 비가 눈이 되어 흩뿌린 3월 첫째주 토요일 전까지는 말이다.

필자는 김대승 감독을 만나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에게 마치 번지점프 같은 끌림의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갖고 있던 생각과 달리 너무나 부드럽고 자연스런 말솜씨와 태도에 매료당했던 것이다. 일단 김대승 감독은 말을 조리있게 또박또박 설명할 줄 아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을 하였는데, 마치 질문을 위해 미리 준비해놓은 답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건 그만큼 그 자신이 영화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준비가 많이 되어 있다는 반증 아닐까. 인터뷰는 정말 유쾌했으며, 겸손함 속에서 묻어나는 그의 자신감은 사람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Q: 10년간 충무로에서 도제수업을 쌓으신 후 입봉하신 걸로 아는데, 연출부 생활은 어땠나요?
A: 1991년 정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부터죠. 중대 연영과를 졸업하고 충무로로 뛰어들었어요. 제가 학교 다니던 때에 6월 항쟁 등 정치적인 사건이 많았지만, 저는 그런 것보다 상업영화가 하고 싶었어요. 그때 같이 학교를 다니던 분 중 당시 '장산곶매'의 이은(현 명필름 공동대표)씨 같은 분이 있지만, 저는 '장산곶매'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충무로로 가는 방법을 택했어요.

Q: 영화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저희 아버지가 영화광이세요. 70년대에 소니 베타캠이 나왔을 때 그걸 직접 구입하실 정도셨죠. 전 아버지 따라 <삼손과 데릴라>, <싱잉 인 더 레인> 등을 봤어요. 그 덕분에 제가 하고 싶은 건 계속 영화였는데, 고등학교 때는 괜히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말리시더라구요. 영화 하려고 했던 놈이 왜 한눈을 파냐고 하셨어요. 집안에서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아마 전 연출부 생활을 견뎌내지 못했을 거예요. 10년간 총수입이 2천만원이었어요. 연봉으로 따지면 2백만원인거죠. 도저히 그걸로는 생활이 안되요. 아마 영화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경제적인 면일 거예요. 저도 뭐 아직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구요.

Q: 아버지가 <번지점프를 하다>를 보고 뭐라고 하시던가요?
A: 무척 좋아하시죠.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구요.(웃음)

Q: 좋아하는 영화가 있으세요?
A: 최근에 <증오>를 좋게 봤어요. 그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정말 싸울 것 같이 힘이 느껴져요.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의 <춘향뎐>도 좋아하구요. 드라마에서 연륜이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그외에는.. 요즘 영화를 많이 못봐요. 데뷔하려고 준비하고서부터는 거의 안봤어요. 의도적으로 피한거죠. 좋아하는 영화가 나타나면 분명히 무의식적으로 그걸 흡수할테고 그게 겁났어요.

Q: 임권택 감독 밑에서 도제수업을 받으셨죠?
A: 그건 제게 너무 값진 경험이었어요. 임 감독님은 저에게 하나의 본보기 같은 분이세요. 인간적으로나 영화에서나 너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정말 그런 훌륭한 분이 한국영화계에 많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예요. 궁극적으로 제가 닮고 싶은 분도 임 감독님이죠. 제 영화의 두번째 시사회때 감독님을 모셨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저를 막 야단치시더라구요. '드라마는 좋은데 사운드 믹싱은 왜 그모양이야..' 이런 식으로요. 그분이 차를 타고 떠나시는 길에 막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나니 제 영화가 더 창피해지더라구요. 그런데 며칠 후 모 영화잡지에서 임 감독님이 인터뷰한 것을 보니까 저에 대해 기대되는 신인이라고 평을 해주셨더군요. 그 말을 제게 직접 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웃음), 제자를 아끼는 스승으로서의 따뜻함이 넘치시는 분이세요.

Q: 개인적으로 영화를 참 좋게 봤는데, <번지점프를 하다>의 촬영이나 제작여건은 어땠나요?
A: 일단 일정에 너무 쫓기다보니 정신이 없었어요. 기획단계는 서로 토의하면서 아주 자유스럽게 갔어요. 하지만 촬영과 후반작업은 정말 고생이었죠. 2달간 58일 촬영을 했으니 거의 밤샘촬영이었어요. 후반작업도 보름만에 끝냈구요.

Q: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동성애적 묘사에 대해 얘기하실텐데요, 어때요? 의도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있었나요?
A: 전혀요. 전 동성애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고 그 분야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동성애자인 것도 아니구요. 물론 화면에서는 남자와 남자가 손을 잡고 있으니 누가 봐도 그런 느낌을 가질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게 해결되고 관객들도 다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상황을 너무 낙관한거죠. 혹자는 이 영화에서 이병헌이 정신과 의사에게 듣는 "정상이에요"라는 말이 혹 동성애자를 비하한 것이 아니냐라고 묻곤 하시죠. 그 점은 제작진의 이해가 짧았던 부분이에요.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도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이번에 알게 됐고 또 놀랐어요. 영화는 개인작업이 아니고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느끼게도 됐지요.

Q: 영화는 미스테리 구조로 진행되죠. 만약 이 영화가 <사랑과 영혼>처럼 환타지 멜로로 갔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동성애에 대해 무관심했을 거예요. 마치 우피 골드버그가 남자였다는 설정이 별로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이 영화는 미스테리 구조로 진행되고 그 말은 즉, 처음에 동성애를 부각시켰다가 서서히 알고보니 동성애가 아니라 인우와 태희의 윤회하는 사랑이더라 라는 걸 관객이 깨닫게 하는 구조예요. 제 생각에는 그런 미스테리한 플롯 때문에 관객들이 더 동성애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
A: 영화를 미스테리 구조로 만든 것은 그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런 사랑의 줄기를 보여주려면 관객이 하나씩 알아가게 만드는 방법이 좋을거라 생각했어요. 아마 이 영화를 단순히 환타지 멜로로 만들었다면 지금보다 더 재미없었을 거예요. 특별히 미스테리 구조로 인해 동성애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지요.

Q: 제가 영화를 보면서 유일하게 거슬리는 부분은 마지막에 기차의 플랫폼에서 둘이 재회하는 부분이에요. 거기서 스크린은 차창에 비추어진 둘의 모습을 찍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답답했어요. 이전까지 현실과 환타지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 것 같다가 이 부분에서 갑자기 환타지적인 면이 너무 강해지는 데서 오는 부담감이라고 할까요?
A: 일단 그 부분에서는 뭔가 확실히 드러내고 싶었어요. 물론 머리 좋은 관객들은 이전까지 스토리로 봤을 때 현빈은 태희다 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보여주고 싶었어요. 보여주되 그걸 그냥 정면으로 찍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한 번 걸러서 보여준 것이 그 창문 장면이죠. 사실 그 장면은 촬영시간에 쫓겨 날림으로 찍은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보면 그 장면에서의 이병헌씨와 이은주씨의 연기도 훌륭하고, 또 화면도 좋다는 분도 계세요. 기차의 창은 스크린 안의 또다른 스크린이에요. 저는 의도적으로 1983년의 기차역 플랫폼과 2000년의 기차역 플랫폼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았는데 그건 둘 사이의 17년간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한다고 설정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병헌을 만나기 위해 여현수가 달려오면서 17년이란 세월 역시 달려오는 거예요. 그리고 딱 이 장면에서 만나요. 기차의 창문 안에서요. 말하자면 창틀은 2000년의 1983년이 되는 거죠. 관객이 보는 스크린이 2000년이라면 창 안에서 서로 만나는 남녀는 1983년에 있는 거예요.

Q: 시나리오를 받아보셨을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둔 것이 있나요?
A: 글쎄요, 결과적으로 전 이 영화에서 평범한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 우리가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마시는 것이 평범하지만 다 소중한 사랑이거든요. 어떤 분들은 이 영화에서 1983년의 사랑이 너무 평범한 것 아니냐라고 하시는데 그건 평범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운명적인 사랑도 결국 평범하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거든요. 또 한국에서 연애를 하는 사람이라면 다 그런 평범한 과정을 거쳐오고 있을 거예요. 이 영화에는 특히 발을 묶는 이미지가 의도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즉, 이병헌이 이은주의 신발끈을 묶어주거나 운동회에서의 삼각달리기, 왈츠를 추며 발로 스텝을 맞추는 것, 또 번지점프대에서 발에 끈을 묶고 뛰어내리는 것 등 발을 묶는다는 것을 동일한 방법으로 보여줌으로써 둘이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자세히 보시면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과 운동회의 삼각달리기 장면의 컷 구성-장면연결 방법이 같아요. 발에 대한 클로즈업으로 카메라가 사건에 개입을 하구요, 이은주의 얼굴을 보여주고 다음 상대컷으로 이병헌을 보여주는 식이에요. 발에 대한 것은 그런 식으로 기조를 맞춰가려고 했어요.

Q: 감독님 스스로 꼽으시는 베스트 컷 3개가 있을까요?
A: 저는 이 영화에 베스트가 없어요. 장면 하나하나가 다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 영화는 저 혼자 만든 영화가 아니라 스탭과 배우들이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개인적인 느낌으로 과소평가하는게 그분들에게 누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굳이 베스트 컷 3개를 꼽자면, 우선 비오는 날 공중전화박스에서 이병헌이 이은주에게 '나 너랑 자고 싶어'라고 말하는 장면이에요. 그 장면에는 이은주라는 배우의 섬세함이 묻어나 있어요. 두번째는 이병헌이 칠판에 줄을 긋고 학생들에게 첫 인사를 하는 장면이에요. 이전까지 1983년의 어리숙함을 벗고 17년이 지나 자상한 교사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단 한 장면에서 표현해내고 있어요. 이병헌이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를 알 수 있는 장면이죠. 세번째는 플랫폼에서 둘이 재회하는 장면이에요. 기차의 창문 사이로 보여지는 환타지죠.

Q: 배우들의 연기는 어땠어요?
A: 저는 참 운이 좋은 신인감독 같아요. 이병헌씨와 이은주씨, 여현수씨도 연기를 너무 열심히 잘 했어요. 크랭크인날, 준비를 마치고 레디 액션을 외치는데 이병헌씨가 "감독님 잠깐만요. 이 장면 꼭 이렇게 가야 하나요?" 라면서 저를 부르는거예요. 저는 내심 내가 신임감독이라 날 무시하는구나 라며 배우 잘못 만났다고 괴로워했어요. 그런데 다음날이 되니까 그게 제 오해라는 걸 알았어요. 이병헌씨는 촬영 내내 그런 말을 달고 다니는 배우였던 거예요. 자기가 직접 만들어갈 줄 아는 배우인거죠. 촬영장에서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는데 그게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 제가 많이 수용을 했어요. 이은주씨 역시 마찬가지예요. 21살 밖에 안된 배우지만 "감독님 이거는요.."를 달고 살아요. 욕심이 많은 게 느껴져요. 둘의 연기가 영화를 정말 살렸다고 생각해요. 전 영화제에서 제가 신인감독상 받는 것보다 이병헌씨가 남우주연상 받는 것을 더 바랄 정도예요. 특히 여관에서 이병헌씨와 이은주씨의 연기는 본인들이 다 직접 한거예요. 저는 그저 이 장면은 관객이 어색하게 느꼈으면 좋겠다 라고 상황만 설정해 줬어요. 그랬더니 두 사람이 다 만들어서 연기 했어요. 너무 훌륭하지요. 임현빈 역의 여현수씨의 경우는 '사상최대의오디션'에서 캐스팅 되었는데 이전에 TV 드라마 [허준]에 출연했던 적이 있는 배우라 믿는 구석은 있었지만 내심 불안했어요. 그 역할을 소화해내기에는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서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연기를 보면 다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면 홍수현씨의 경우는 제가 정말 미안한 경우에요.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지만, 저는 딱 밝은 여자아이의 이미지만을 요구했거든요. 그래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차단했고 제 캐릭터에 맞추었어요. 그 점은 지금도 참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Q: 다음 작품을 준비중이신가요?
A: 몇 개의 제안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 정하지는 않았어요. 장르에 관계 없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내일이라도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어요.

Q: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고 싶으세요?
A: 제가 마음 속으로 정말 하고 싶은 영화는 임권택의 <만다라>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같은 작품이에요. 그런 것들을 꾸준한 작업을 통해 연륜이 쌓인 뒤에 자연스럽게 낳고 싶어요. 그게 제 인생관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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