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그렇지만 보수적인 오스카 시상식의 결과는 일반인들의 예상과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상결과를 TV로 지켜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그토록 보수적인 아카데미 노친네들이 흑인영웅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줄 리 없지'. 〈허리케인 카터〉를 통해 온몸으로 열연한 덴젤 워싱턴에겐 분통 터지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그는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것 같다.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올 오스카 수상식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아메리칸 뷰티〉라는데 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메리칸 뷰티〉의 1등 공신이자 히로인은 역시 케빈 스페이시. 그는 〈아메리칸 뷰티〉를 통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며 딸의 친구에게 반해 대마초와 스포츠카 등에 빠져드는 중산층 콩가루 집안의 가장 레스터 버냄 역을 리얼하게 소화해 냈다. 결과는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 그는 이번 수상으로 두 번째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악마적 카리스마를 지닌 카이저 소제 역으로 열연한 〈유주얼 서스펙트〉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것이 오스카와의 첫번째 인연이었다.(그당시만 해도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는 중고 신인이었다)

넓은 이마에 창백한 피부,얇은 입술이 특징인 케빈 스페이시는 59년 7월 26일, 미국 뉴저지 사우스 오렌지 태생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스탠드업 코미디언 생활을 전전하다 뉴욕으로 이주, 2년간 줄리어드 대학교에 다녔다. 이후 오프 브로드웨이의 무명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피나는 자기 연마끝에 할리우드 정상에 선 노력파 배우라 할 수 있다.(요즘 얼굴로 뜨고 있는 다른 청춘 스타들과는 멀어도 한참 멀다.)

우리에겐 〈쎄븐〉과 〈유주얼 서스펙트〉를 통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기묘한 악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고 가공할 연쇄 살인범역을 맡은 〈쎄븐〉에선 으스스한 분위기와 긴장을 한껏 불어넣었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와 〈쎄븐〉의 연쇄살인범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관객들은 금세 섬뜩한 연기를 보여준 케빈 스페이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로 잰 듯한 그의 치밀한 연기는 다름 아닌 연극무대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활동하게 되었는데,그의 영화계 입문은 〈졸업〉의 마이클 니콜스 감독을 통해 이뤄졌다. 니콜스가 연출하던 연극 〈헐리벌리〉에서 하비 카이텔의 대타로 출연하게 된 인연으로 〈허트번〉과 〈워킹걸〉에 얼굴을 내밀게 된 것이다.

〈글렌게리 글렌로스〉, 〈북회귀선〉등의 영화에서 감초역할을 해오다가 알란 J 파큘라의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에서 사이코 살인마의 면모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주무대는 연극무대와 텔레비전. 91년 〈로스트 인 용커스〉로 토니상을 수상한 그의 영화배우 출세작은 그에게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유주얼 서스펙트〉이다.

그리고 〈아웃브레이크〉, 〈타임 투 킬〉등의 블록버스터 영화로 활동 영역을 넓혔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알비노 앨리게이터〉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만테나,맷 딜런,게리 시니즈 세 배우가 부랑아로 나와 엉뚱한 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페이 더너웨이가 출연하는 등 화려한 출연진들이 포진한 작품이다. 흥행은 그저 그랬지만 비평면에선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후 〈LA 컨피덴셜〉,〈네고시에이터〉,〈벅스 라이프>(목소리연기)에 출연하면서 할리웃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렇지만 '연기 잘 하는 만년 조연배우' 라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평을 받아 온 그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해체과정을 신랄하게 풍자한 〈아메리칸 뷰티〉로 연기력은 물론 스타로서 상품성도 만천하에 과시했다. 비밀주의 스타로도 유명한 케빈 스페이시는 현재 혼자 살고 있으며 곧잘 언론과 숨바꼭질을 벌이기도 한다.

이제 〈아메리칸 뷰티〉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케빈 스페이시. 이제 그의 차기작이 궁금해진다. 현재 그의 차기작으론 〈발송 뉴스Shipping News〉가 유력하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동명 소설이 원작인 이 프로젝트의 연출자는 〈개같은 내 인생〉, 〈길버트 그레이프〉의 라세 할스트롬으로 내정된 상태다. 미 언론들은 케빈 스페이시는 아직 출연 여부에 대한 확답을 내놓지 않았지만 거의 확실시된다고 전했다. 〈발송 뉴스〉는 아내가 사창가에 내다 판 두 딸을 찾아내 새 삶을 시작하려 했다가, 불운한 과거의 가족사를 알게 되는 신문기자 이야기. 미라맥스와 컬럼비아가 함께 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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