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와 문화관광부가 최근 한국 영화진흥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일본문화 3차 개방이 임박했음을 시사해, 일본영화 전면개방이 영화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40%에 육박했다지만 왠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직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당수 일본 영화들의 내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차 개방때 개봉됐던 〈카게무샤〉(6만5천), 〈하나비〉(6만), 〈우나기〉(7만)등이 작품성과 작가의 명성에도 불구, 흥행실적에선 고전했지만 〈러브레터〉와 〈철도원〉, 〈감각의 제국〉, 〈4월이야기〉등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일본영화는 조금씩 그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일본영화의 전면적 개방이 영화 관객들에겐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밤낮으로(?) 한국영화를 걱정하는 영화 제작자나 기획자 입장에서 보면 그리 맘 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일본영화 역습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는 누굴까? 〈쉘위댄스?〉의 '야쿠쇼 코지'? 〈러브 레터〉의 '나카야마 미호'? 아니면 신세대 연기자의 선두주자인 〈4월 이야기〉의 '마츠 다카코'?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다름 아닌 〈철도원(鐵道員)〉의 '다카쿠라 켄(高倉健)'이다. 그것도 잠깐 인기를 얻고 마는 다른 배우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일단 그는 연기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물론, CF와 TV드라마에서 간혹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연기와 노래, MC등을 병행하는 다른 연예인과는 다르다) 이미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액션영화의 주역을 맡고 있다. 형사, 사무라이, 의리있는 야쿠자, 강직한 군인, 불의에 맞서 싸우는 시민 등 주로 우직한 남자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배우이기도 하다. 〈야쿠자〉에서 〈블랙 레인〉까지 영어로 대사가 되는 거의 유일한 일본배우가 바로 '다카구라 겐'이기 때문이다.

'다카구라 겐'의 본명은 '오다 도시오'. 1931년 2월 16일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암울한 전쟁속에서 소년시대를 보냈다. 메이지 대학을 거쳐 도이에 영화사 2기로 입사했으며 1956년 〈전광 가라데〉로 데뷔했다. 이후 사무라이, 야쿠자, 갱스터 장르 등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70년대 후반부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는데 '야마다 요지' 감독의 〈행복의 노란 손수건〉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소 신파적이긴 하지만 그의 변신은 성공을 거뒀다.

1981년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엑기(驛)〉에선 모범적인 형사이자 사격대표 선수역을 맡아 아시아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경찰이라는 직업덕분에 가정조차 지키지 못하지만 변함없는 신념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인생의 무게에 대해 고뇌하는 그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몰고 왔고 개봉 당시 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다카구라 겐'은 〈엑기〉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과 인연이 깊다. 〈지옥에선 내일이 없다(地獄の?に明日はない)〉로 첫 호흡을 맞춘 후 〈겨울꽃(冬の華)〉, 〈아, 응(あ,うん)〉등 17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불타는 전장〉, 〈야쿠자〉, 〈블랙 레인〉, 〈미스터 베이스볼〉등은 그의 이름을 일본 건너 해외로까지 알리게 했던 작품들. 그리고 〈형〉, 〈치로루의 만가〉등 TV 드라마에도 출연하여 안방 팬들마저 사로잡았다. 하지만 〈47인의 협객〉 이후 오랜 침묵에 들어가자 조심스레 은퇴설이 나돌았다. 그러던 중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과 〈철도원(鐵道員)〉으로 깜짝 컴백을 했고 영화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다. 〈철도원〉은 14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 셀러인 동시에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直木賞)을 수상한 소설 〈폿포야(鐵道員)〉를 영화화한 작품. '다카구라 겐'이 오랜 공백을 깨고 주연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관객이 몰려들 만큼 일본영화에서 그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홋카이도의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이야기를 빼어난 영상미로 담아낸 영화 〈철도원〉은 특별한 반전도, 특별한 사건도 없지만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아름다운 영상미는 둘째 치더라도 설원에 서 있는 '다카구라 겐'의 모습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1966년부터 '다카구라 겐'과 함께 17편에 이르는 수작을 만들어낸 감독, '후루하타 야스오'는 '아사다 지로'의 원작을 스크린에 생생히 되살려냈다는 평을 얻었다.

데뷔시절부터 남성적 이미지를 통해 일본 최고의 인기를 누려온 그는 69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음을 과시하고 있는 배우이자 '일본인의 정신', '진짜 일본인'이라 불린다. 이처럼 일본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다카구라 겐'. 그처럼 근사한 배우가 우리 영화계에도 한 사람쯤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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