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최고의 스타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일 것이다. 이 두 배우 덕분에 부산영화제는 마지막까지 인산인해를 이뤘으며 폐막식은 한층 더 빛났다.

두 배우가 함께 출연한 폐막작〈화양연화(花樣年華)〉는 1960년대 홍콩의 단아하고 정숙한 이미지를 왕가위 감독 특유의 시적이면서 몽환적인 스타일로 잡아낸 수작. 뿐만 아니라 양조위에게 생애 최고의 기쁨을 선사한 작품이다.〈화양연화(花樣年華)〉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

1962년 광동 태산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란 양조위는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가족 구성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었기 때문.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일 만큼 외톨이로 자랐다. 이러한 어린시절의 경험은 냉소적이고 우수어린 연기관을 갖게 했다.

양조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우연히 친구와 함께 찾아간 '배우양성학교'의 프로듀서 눈에 띄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배우양성학교' 졸업 이듬해인 83년〈청춘차관(靑春差館)〉으로 데뷔, 오랫동안 온갖 싸구려 장르들을 넘나들며 많은 영화들에 출연했다. 대부분의 홍콩 배우들이 그러하듯〈녹정기(鹿鼎記)〉와 〈대운하(大運河)〉,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등의 TV 드라마로 서서히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아주 천천히 자신의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물론 홍콩 특유의 엔터테이너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가수로도 데뷔했다.

89년 대만출신의 세계적 거장 후 샤오시엔 감독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비정성시(悲情城市)〉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귀머거리 '문청'을 뛰어나게 연기한 것이다.

〈비정성시(悲情城市)〉는 50여년간 일제의 지배를 받고 45년 8월에 해방되지만 그 이후 중국 국민당 정권 하에 핍박당했던 평범한 대만 사람들의 아픔을 느리고 차분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왕가위 감독과의 만남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지만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아비정전(阿飛正傳)〉에 출연했지만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 원래 2부작으로 계획되었던 〈아비정전(阿飛正傳)〉이 여러 가지 사정상 그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2부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아비정전(阿飛正傳)〉은 양조위뿐만 아니라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유가령, 장학우 등 당시 잘 나가던 스타들이 총출동했던 대작이다. 하지만 흥행은 거의 재앙에 가까울 만큼 참패했고 아직까지도 속편은 제작되지 못하고 있다.(언제 제작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왕가위 감독 외에는)

하지만〈중경삼림(重慶森林)〉은 달랐다. 새로운 영상세대를 위한 도시적 감수성과 왕가위 특유의 스타일, 여기에 양조위, 금성무, 임청하, 왕정문의 스타성이 더해져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모든 유행을 일순간에 뒤집었다.

〈중경삼림(重慶森林)〉과는 달리 〈동사서독(東邪西毒)〉은 쓸쓸한 무협영화. 양조위를 비롯한 대규모 스타군단을 이끌고 중국의 사막으로 날아간 왕가위는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황량하면서도 무상한 사랑 이야기를 선보였다.

양조위하면〈씨클로(Cyclo)〉도 빼놓을 수 없다.〈씨클로〉는 트란 안 흥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도시 뒷골목의 가난하고 고단한 삶들을 과장 없이 그려낸 수작이다. 라디오 헤드의 슬프고도 폭발적인 사운드 '크립(Creep)'을 유행시켰고 시인이자 포주로 등장한 양조위의 우울하면서도 허무한 미소가 아직도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 있을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

〈동사서독(東邪西毒)〉의 사막에서 지구 반대편 남미의 끝자락으로 날아간〈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는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로 국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한참 후에야 삭제된 상태로 개봉되었다. 정열적인 탱고 리듬과는 달리 쓸쓸하면서도 안타까운 두 남자간의 사랑 이야기를 선보이며 뭇 여성들을 애태우게 했다.

데뷔이후 오랫동안 싸구려 장르영화에 머물러 있던 양조위는 이제 아시아 영화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페르소나' 자리잡았으며 고정되지 않는 에너지의 열정을 다양하게 분출할 줄 아는 진정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다.

"난 우울하고 비애를 품은 사람이다. 심하게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그래서 활발하고 즐거운 역할보다는 고독한 성격의 배역을 맡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연기하는 데 훨씬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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