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깐느 영화제에서 난니 모레띠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TV에서 접하고 기뻤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이탈리아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그이긴 하지만, 그런 그의 영향력 이전에 개인적으로 난니 모레띠를 좋아한다.

난니 모레띠를 처음 안 건 94년 그가 <나의 일기>로 깐느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였다. 인터넷으로 그의 영화를 주문해서 보았는데 너무 좋았다. 재치와 위트가 넘치고 소박함과 따뜻함이 화면에 가득했다. 더구나 혼자서 여행하면서 영화를 만들어가는 모놀로그적 구성은 나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몇 년 전 영화동호회를 운영할 때 이 영화를 정기상영회에서 상영한 적이 있었는데, 상영을 위해 비디오에 자막을 넣고, 홍대 근처의 스크린이 있던 술집을 임대하고, 어느 늦겨울날 주말 저녁 손님이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다가 60명 정도의 회원을 맞이하고 영화를 함께 봤던 기억이 난다.

제니퍼 빌즈를 연호하며 영화를 이야기하는 난니 모레띠가 등장하는 1부는 누구나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어서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었다. 2부는 TV 연속극을 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한 노인과 난니 모레띠의 여행담인데 그는 역시 소박하게 웃길 줄 안다. 반면 3부는 좀 지루하다. 난니 모레띠가 가려움증을 병원에서 치료받는 이야기인데 치료의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인상깊다. 난니 모레띠가 물을 마시면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관객에게 이야기하는 배우들은 이전까지 많았지만, <나의 일기>의 난니 모레띠처럼 기묘한 울림을 주는 장면은 별로 없었다.

<나의 일기>의 흥겨움은 <붉은 산비둘기>(1989)에서도 계속되었다. <붉은 산비둘기>는 <나의 일기>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로,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수구경기를 볼 수 있던 작품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미셸 시망이 만든 <엄청난 피곤> 미국판 비디오의 예고편에서 <붉은 산비둘기>의 예고편을 처음 보았는데, 난니 모레띠가 꼬마 아이를 보고 혀를 낼름거리는 그 예고편은 지금 생각해보면 40대 좌파 영화인의 귀여움을 한껏 드러낸 명장면(?)을 담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일기>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난니 모레띠의 영화는 대개 정치성을 띠고 있다. 그 자신이 이탈리아 온건좌파의 열혈분자로서 활동하고 있기도 한데, 그는 지식인, 영화인이면서 적극적인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코미디에서도 계급관계를 그리고, 때로는 직설적으로 정치성을 띤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직설적인 난니 모레띠를 좋아한다. <4월>(1998)에서 보여준 상징적이고 감각적인 정치성이야말로 난니 모레띠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언론이 쓰레기라며 신문 스크랩을 꼴라주해서 화면에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마치 모더니즘 미술을 보는 듯한 화면에 난니 모레띠 특유의 조롱과 유머가 섞인 나레이션은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움을 주었다. 1998년 4월은 이탈리아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해였는데 집권우파가 몰락하고 좌파의 지지율이 상승하여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해 있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 사주가 정치에 도전하여 총리에 당선되는 이탈리아 사회는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기에 아마도 난니 모레띠의 꾸준한 입김이 이탈리아에서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신작 <아들의 방>은 이탈리아에서 흥행돌풍을 일으켰던 영화다. 난니 모레띠가 역시 주연이고 이번에는 아들에 대한 감동적인 우화를 들려준다고 하는데,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어떤 영화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좀더 세련되게 다듬어진 대사들에서 그의 세계관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영화일 것이다. 스토리는 다소 평이하게 느껴지겠지만, 보고 난 후의 느낌은 강렬할 것이다. 깐느에서의 수상 이후 발빠른 국내 영화수입업자들이 이미 영화를 수입해서 개봉대기중에 있다고 하는데, 국제 영화마켓에서 종종 조롱받던 그 발빠름이 때로는 영화를 빨리 볼 수 있다는 설레임에 대체되기도 하니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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