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의 화제의 영화 #16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이런 시를 떠올리며 쓰는 화제의 영화는 좋은 영화, 가슴을 울리는 영화였음 좋겠다. 그러나 가을을 겨냥하고 선보이는 <청춘>과 <물고기자리>는 불행히도 시가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이미 <깊은 슬픔>으로 흥행의 슬픔을 맛본 곽지균 감독은 마흔이 돼서야 비로소 청춘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회고하지만 그가 떠올리는 것은 청춘이 아니라 섹스의 추억뿐이다. 최영미의 시 '마지막 섹스의 추억'처럼 갈기갈기 발라져 환부를 드러내는 섹스가 아닌 다음에는 섹스가 이다지도 추악하게 비춰지는 것은 웬일일까?

풀샷, 바스트샷, 미디움샷 등 이미 익숙한 앵글들과 정상위, 후배위 등 이미 보아온 체위 그 이후에 무엇인가 있다면 일단 흥행만 시키면 되지 않느냐는 흥행중독증 뿐이다. 벗기면 기본은 한다는 것이 무슨 법칙처럼 돼버린 현행의 영화판은 첫사랑과 첫경험으로 가슴이 아릴 그 풋풋한 시기를 온통 섹스 이외에는 무엇도 없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성인용 스틸사진집과 일반용 스틸사진집이 있을 정도로 홍보에 능한 <청춘>을 보고 있노라면 스포츠신문용 홍보지와 일반 신문용 홍보지를 함께 보고 있을 때 느끼는, 같은 내용을 한번은 부풀려서 한번은 너무 점잖은 척 할 때의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대상이 다른 스틸사진집의 그 상반된 이미지는 어쩌면 영화를 찍은 감독의 마음같아 가슴 한쪽이 저려오기까지 한다.

그렇게 개판이냐라고 물으면 그래도 공감가는 부분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도 남성 관객일 때 한해서 그렇다. 소년이 청년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여자는 천사와 요부, 그 경계선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대상화된 섹스, 즉물적인 섹스를 보고 있노라면 여자는 감정을 가진 인간일까, 그런 의문을 금치 못한다. 자살하는 하라가 설득력이 없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감상적 비판이라고 본인을 욕하면 할 말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 영화의 심도 깊은 비판이 나오지 않는 것은 관객만의, 혹은 영화읽기를 자처하는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닐 듯 싶다.

그래서 첫 문구를 이렇게 써야 할 것 같다.

"영화를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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