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집의 비디오 환경은 욜라 열악하다. 우선 비디오와 테레비가 안방에 있기때문에 늦은 시각 비디오 시청은 불가능하다. 또 울 엄니께서 거의 매일 집에 계시기 때문에 야한 비됴, 빠굴 비됴 등은 시청이 불가하다. 그런데 꼭 보고 싶은게 있다면, 엄니와 같이 시청할 각오를 가지고 보아야한다.

'거짓말'과 '감각의 제국'을 이제서야 보게 된 것은 울 집 열악한 비됴시청 환경 덕도 있지만, 장선우 감독에게는 '나쁜 영화'를 보고 적잖이 실망하였기 때문에 그걸 보기 그랬고, 원작자인 장정일에게도 현대비평수업에서 '아담이 눈뜰때'를 텍스트로 다뤘을때 적잖이 실망한 이유도 있다. 그렇다면 '감각의 제국'은? 그건 특별한 이유가 없다. ^^; 그냥 늦게 보게 되었을 뿐이다.

영화 '거짓말'은 외설시비가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야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성기 노출시비와 사디스트(때리며 흥분하는 가학변태성욕자)와 매조키스트(맞으면 흥분하는 피학변태-요기서 변태라는 말에는 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음. 정상위를 하는 사람을 정상으로 두는 것은 오래된 습관일 수도 있지 않은가?-성욕자)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내용, 원작의 음란물 판정 등등의 사건으로 시끌시끌하였으나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는 하나도 야하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이지 않나 싶다.

장정일은 현대소설을 다루는 수업이면 늘 배우게 되는 작가인데, 대부분의 교수님들께서 그에게 '포스트 모더니스트'라는 정체불명의 딱지를 놓으시는데, 난 그게 참 불만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용어자체가 유행할때, 그 문화적 시류에 대한 논의는 참으로 빈약했다는 것과 언제 우리에게 구조주의적 문화가 형성되었었는지 무식한 난 잘모르겠는데 그것이 지나가 포스트(post- :탈-)구조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이 되었는지..

내생각에는 장정일에게는 포스트모더니스트라는 별호를 붙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그의 데뷔작 '아담이 눈뜰때'에 보여지는 '80년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짙은 혐오'와 '운동권들에 대한 비관적 시선'은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졸라 쉽게 말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기존 생각들은 제각기 다 맞을 수 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무엇은 없다'식의 '니말도 옳고 조또 떠들어대는 저말도 옳다'라는 식의 논의라고 아주 무식하고 거칠게 정의내린다면 장정일은 절대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다. 왜?

y(김태연 분)와 j(이상현 분)는 고우리라는 레즈비언이며 y의 친구인 조소과 지망생을 통해 알게된 사이이다. 그들은 첫만남에서부터 섹스를 하기 위해 인근 여관방에 틀어박혀 빠굴을 뛴다. 두번째 만남에서 j는 y의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고, 세번째 혹은 네번째 만남에서는 갖은 도구로 작업(?)에 들어간다. j는 때리고 y는 맞는다. 엉덩이 치수만큼 때리고 손을 갖다대거나 피하면 죽도록 맞는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그 역할이 바뀌게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y와 j, 그러나 곧 물 만난 물고기 마냥(?) 둘은 열심히 때리고 맞는다. 그것은 흡사 학생주임에게 맞는 문제아들의 포즈로 맞았고 j는 고향집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한다. 여고생에서 여대생으로 커버린 y는 j가 떠나 있는 동안 폭주옵빠를 사귀고, 늙은 교수와 빠굴을 뛴다. 파리에 있는 j는 부인에게 엎드려 때려달라고 개처럼 빌지만, 부인은 그런 j를 이해할 수 없다.

서울로 돌아온 j는 y와 여전히 그런 관계를 지속하는데, 한참 땀 빼고 돌아오니 작업실은 불에 타버렸다. 그 다음 날부터 y와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가출소녀들이 의례히 그렇듯이 머리를 박박 깎인 y가 오랜만에 j를 만나고 그들은 더 완숙하게 선생과 문제아, 아버지와 아들처럼 때리고 맞는다. j는 점점 그 폭력에 힘들어하고, y는 점점 그 폭력에 심취하게 된다. 점점 초라한 여관방으로 전전긍긍하던 y와 j, 우리에게서 폭주옵빠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j는 직감적으로 y가 작업에 들어갔었음을 안다. j는 y와 헤어져 파리로 간다. 파리로 간 y는 삐걱거리는 생활에 염증을 느끼다 브라질로 이민가는데 j가 드골공항에 잠시 들렀다는 소식에 버선발로 나간다. 그는 곡갱이 자루 한자루를 들고 와 그와 섹스를 한다. 그리고 간다 말없이 떠난다. j의 부인은 j의 허벅지에 새겨진 '내님'이라는 문신을 보고, 누구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j는 거짓말을 시작한다.

감독은 철저히 등장인물들에게 익명을 부여함으로 등장인물들이 보편적임을 강조한다. '고우리'와 j의 부인을 빼놓고 말이다. 이런 점에서 '감각의 제국'과는 무척이나 다르다. j는 그곳이 동대구역이든 대구역이든 어느 중소도시건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특정 지명이 나오는 곳은 '파리, 서울, 브라질, 간접적으로 동대구' 쯤이 전부이다. 하물며 여관 이름 하나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명이 부여된 우리와 지희(j의 부인의 실명으로 사료되나 치매끼 걸린 j의 어머니의 말이기에 확실하지는 않다)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것은 말 그대로 평범한 '우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y와 j는 이해하지 못할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j의 부인은 파리로 유학을 갔고, y의 폭주옵빠는 지나칠 정도로 그를 감시한다. 우리도 동성애자이기는 하나 그의 동성애는 y에 대한 지극한 정성이상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j에게 맞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모습의 우리는 y의 심적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 y와 j는 각각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소외시키고 있기는 하나 사회로 다시 편입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서울로 상징되는 폭력적인 사회로는 말이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남루한 여관방이 전부이다. 한번도 집에서 이뤄진 섹스란 없다. j는 파리에서 자신의 부인과의 섹스를 제대로 치뤄내지 못한다. 그들은 소외받아 여관방을 내몰리고, 그곳에서 행복한 결합을 한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그들의 결합방식은 폭력적이다. '퍽! 자기야 사랑해!'라는 방식, 그것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폭력성이 그들을 소외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을 사랑한다.

y와 j는 닮아가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 학주와 폭주옵빠와 같이. 천사와 같은 y가 먼저 변하고 정글과 미지의 땅 브라질로 이민을 간다면 j는 극단과 자유의 나라 프랑스에 있으나 y도 j도 작은 서울일 뿐 이민으로 무엇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들은 이미 작은 '서울'이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 배우들과의 인터뷰, 극중 고우리가 y를 폭행하는 장면이 cut out되는 장면을 스텝들과 함께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는데 이것은 전작 '나쁜 영화'에서도 선보인 방식이다. 그러나 난 이런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와 시나리오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영화는 원작의 의도대로라면 심하게 역겨울 정도로 관객들을 몰입시켜야 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이건 영화야'라고 말하는 재기 넘치는 편집과 이박사 풍의 달파란 영화음악은 자칫 베드씬의 야시시함으로 극중 무게가 편중되는 것을 막고 구성원들의 뼈 속 깊이 폭력적이게 만드는 사회에 대한 공격이라는 주제의식간의 균형 잡아주는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브레히트 효과는 극의 주제의식을 관객들에게 맡기기 위해 설정된 효과이다. '이건 영화야'라고 말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그들을 띄워놓는 효과이다. 그렇지만 거짓말에서 보여지는 주제의식과 설정은 이미 정형화되어 있다. 무척이나 도식적으로.. 도식적이라는 말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데, 그런 극에서 브레히트 효과를 쓰게되면 무엇이 되는가? 주제의식의 변방에 놓여있는 김태연과 이상현의 섹스에만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벗기 전에 김태연의 인터뷰나 신기(神氣)가 있어야한다는 이상현의 인터뷰, 그리고 촬영이라는 걸 모르던 외국인의 카메라 야리기 등등이 다분히 이러한 의도로 쓰였다.

그런 점에서 '감각의 제국'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남성의 성기를 잘라 음부에 넣고 다녔다는 충격적인 실화 아베사다 사건(1936년)을 영화로 구성하면서 군국주의 일본에 정면으로 직격탄을 날린다. 단 세 방이지만 그 탄두는 강렬하고 정곡을 찌른다. 이런걸 내공빨이라고 하나?

학교 이사장과 관계를 맺는 사다(마츠다 에이코 분)가 온천으로 놀러가자고 조르자 눈에 띄면 매장이라며 학을 떼는 장면과 군화발 짝짝 소리내며 어디론가 가고 있는 군인들의 행렬 반대로 걸어가는 키치조우(후지 타츠야 분)의 우울한 모습을 롱테이크로 잡은 장면, 잠시 잠깐의 꿈장면에서 휑한 의자들만 가득한 경기장에서 숨박꼭질하며 사다를 찾는 장면은 진지하게 좌파진영의 몰락과 더불어 급진적으로 우경화하는 일본사회의 모습을 우울하지만 강렬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그들의 섹스를 두터운 분장 너머로 보고 있기는 하나 웃는 얼굴 뒤로 욕을 하고 있음이 뻔한 묘사를 통해 그들의 치졸함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부각시켜준다. 이 영화가 강렬하게 남게되는 이유는 정공법으로 갔기 때문이다. 일탈적인 성적 방황은 당연히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상징된다. 그게 포르노가 아니라면 말이다.

에구 그럼.. 다시 함 처음으로 돌아가서, 장정일에게 포스트 모더니스트라는 호칭을 붙일 수 없는 이윤? y와 j 사이에서 폭력이 놓여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소외시킨 세상이 그들에게 학습시키고 세뇌시키며 때로는 직접적으로 가한 폭력보다 약하게 묘사되어있다. 그리고 마지막 대사인 '거짓말'에서 보여지듯 사회에 대한 판단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에고에고.. 힘들고 약간은 졸리고.. 점점.. 글이 너무나 평론 같아져서 좀..-.-;;

다들 잘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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