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우의 영화 바로보기 #8

신인 여배우 이지현씨의 몸에 대한 경외에 가까운 찬사(?)로 시작하는 영화 <미인>은 여균동 감독의 5번째 작품. 잔잔한 음악을 선사하는 노영심의 피아노 연주, 몸연출 안은미씨 등을 통해 신경을 썼다는 파격적 섹스신 등을 통해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장안에 화제를 뿌리며 우리에게 다가온 작품입니다. 특히 여름을 맞이한 기획영화들의 틈바구니 속에 등장, 순백색을 표방한 이 영화는 그 장르적 특성상 관객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타 영화들이 핏빛으로 스크린을 장식하고 있는데 반해 순백색을 배경으로 삼아 스크린을 마치 정물화의 그림인양 꾸며낸 배색부터 예사롭지가 않습니다.청순 만화속 주인공의 방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기자기한 소품들이며 그것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하얀색 벽지와 밤낮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차분한 조명 등은 이 영화가 우리에게 사진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배경 속에 남녀주인공들은 그들의 사랑을 나누고(여균동 감독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거죠. 공감하진 않지만) 그리고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발버둥칩니다.

실상 이 영화 속에서 말하는 주제란 실로 단순하기 그지 없습니다. 바로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갈구와 어긋남'라고 하는 것이죠. 남자 오지호는 여자 이지현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하고 여주인공 또한 극중에서 잠깐 등장하는 제3의 남자에게 자신의 맹목적인 사랑을 퍼붓습니다. 기존의 영화들처럼 서로간의 1:1로 이루어지는 사랑을 비추는 영화라면 얼마나 이러한 이쁜 배경들과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멜로드라마를 연출하겠습니까마는 이렇게 어긋난 사랑을 영화 속 내내 연출하는 여균동 감독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요?

영화에서 여 감독은 이 둘의 비뚤어진 '사랑'의 대상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기위해서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노력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육체를 가졌지만 정신마저 소유하지 못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이 얼마나 상투적인 소재인가?) 사랑에 대해서 쉽게 굴복하지 못하고 그녀가 24시간 옆에 있기를 원하며 그녀가 없으면 그 외로움과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해 일기를 씁니다. 어찌보면 현대사회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만 여 감독이 애초에 주어진 영화적 전제가 상당히 극도로 상징적이면서도 시적이었다는 것을 가정해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상과는 달리 그가 펼쳐놓은 한 권의 소설집은 정말이지 실망을 금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야설로 취급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는 영화를 영화로서 말하지 못하고 마치 '시인'처럼 말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사랑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영화에서 남녀주인공들은 마치 연극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한 과장된 연기와 무채색 톤으로 사랑에 대한 정의를 제멋대로 한마디씩 툭툭 던지곤 합니다.(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시는 분들도 있으시다고 간혹 그러시는데 그것은 감독이 가끔가다 던지는 정말 지극히 상투적이면서도 여성의 사랑에 대한 감각을 자극하는 말투 '나는 네가 아프다' 등등의 3류 애정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어투에 자신의 스키마를 얹인 효과일 뿐이지 영화 전반에서 느끼는 것은 아닐거라 생각됩니다.) 남녀주인공 모두는 바로 여균동 감독 자신이며 남녀주인공들은 그들의 어긋난 사랑을 통해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의 완전한 통합'이라는 상투적 결말에 계속해서 어긋나고 그 이유를 여 감독은 자신이 혼자 다 설명하려 듭니다.

즉 이 영화 속에서 화자는 결국 여 감독 자신이란 말입니다. 아니 혼자라기 보다도 '홀로'라는 표현이 맞겠죠. 물론 어떤 영화 속에서나 주제나 화자 자체가 감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본질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멜로 드라마의 남녀간의 어긋난 사랑에 대해 여 감독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사랑에 대한 정의를 이 둘의 관계에 빗대어 독재자처럼 설명하려 하고 있다는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여 감독이 사랑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치 사랑을 철학자의 관점에서 다루려는 듯한 그의 태도는 인간의 원초적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남녀간의 '사랑', '애정', '애욕'에 대한 정의를 자신이 정해놓은 한정된 공간에서 실험하는 듯한 그의 연출에 뭇사람들은 심한 거부감을 받기에 이릅니다.게다가 배우들의 어색하기 짝이 없는 연기는 그나마 그가 의도하고자 했던 바를 반의 반 정도밖에 드러내보이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내고 맙니다.

이번 그의 영화에선 섹스라는 것이 정말 부지기수처럼 나오지만 이러한 섹스에 대한 행위의 횟수에 반비례해 여 감독은 상당한 순결주의자가 아닌가 싶습니다.(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굳이 이 영화의 성향을 가지고 여 감독의 정신세계까지 거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는 적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상투적이며 일반적인 감정을 관객들에게 "짜샤, 사랑은 이런거였어, 니네가 알기나 해? 이건 보통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니거덩"하는 식의 태도로 일관함으로써 관객들의 실소와 분노(!)를 자아내게 했습니다. 또한 음악을 맡은 노영심씨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이 영화의 엉성한 부분들을 어느 정도 메꾸어주고 있지만, 오히려 영화음악으로 쓰지 않으면 좋았을 뻔도 했습니다. 몸연출가 안은미씨의 역할 역시 도대체 어디서 쓰였는지가 의문스러울 정도로 이 영화 속에서 기대만큼의 효과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됩니다.(오히려 유호 프로덕션의 연출자가 더욱 탁월한 안목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암튼 여러가지 예쁜 화면 속에서 독재자가 되어 사춘기 시절의 자신의 이상을 실컷 펼치는 여균동 감독님, 그런 건 영화로 만들어서 극장에 걸지 마시고 집에서 부인과 함께 해보십시오. 남들 보기 부끄럽습니다. 참 그리고 일기 정말 쓰시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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