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상으로 일년에 극장엘 한번 가는 사람들이 다 가서 봤다는 <친구>.
온갖 유행어를 만들어 여러 광고 회사들을 살리고 영화계에서 발을 떼어야 할 뻔 했던 곽경택 감독을 살린 <친구>. '부산 국제 영화제', <리베라 메>와 더불어 부산을 영화 도시로 인식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친구>. 유오성을 진정한 연기파 배우로, 장동건을 잘생긴 얼굴에 연기도 잘하는 배우로 보이게 만든 영화 <친구>. 이제야 비디오로 봤다. .

예고편이나 여러 매스컴에서 하도 많이 보여줘서 본 거나 다름없다는 기분으로 데크에 테잎을 넣고 '고마해라. . 마이 무그따 아이가. .' 라는 인상적인 장면을 기다리며 눈을 부릅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은근히 기대가 컸던만큼. . 그래. . 조건부 실망이다.

남자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이다. 아주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가장 먹히는 캐릭터다. 분명 이야기의 리더가 있을테고 웃긴 녀석이 있을 거다. 이런 인물 중 가장 많이 슬퍼하는 사람은 이야기의 리더이고 관객들을 가장 슬퍼하게 만드는 인물은 웃긴 녀석이다. 내가 보기엔 앞으로 10년간은 어떠한 영화적 실험도 이 영화와 관람자의 이상적 패러다임을 뒤집을 순 없다고 본다. 이러한 영화가 눈물을 쏙 빼고 난 후의 상쾌한 기분을 관객에게 주지 못하면 허탈함을 뺏어간다. (상쾌한 기분을 관객에게 주면 창작자도 상쾌하지만 허탈함을 뺏으면 창작자의 뱃속엔 힘있는 내공 대신 허공이 가득 차게 된다.) 캐릭터의 개성이 크게 좌우한다는 말이다.

<친구>에서 이야기의 리더는 나래이터인 상택이 아닌 준석이다. 기억은 상택이 해내고 준석은 가장 슬퍼하고 중호는 관객에게 가장 안타까움을 줘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곽경택 감독이 자신 친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그러한 영화적 매력은 전혀 없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는 몇몇 사람들의 말과는 달리 내 생각은 너무나 사실적이라는 것이 단점이라고 본다는 말이다. <친구>는 그만큼 관객에게 몰상식적이고 그러므로 의문을 갖게 한다.

이야기의 시퀀스들은 다들 앞의 10분 가량을 잘라놓은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이건 어쩌면 이 영화가 상택이라는 극중 화자에 의해 단적인 기억만을 끄집어 낸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관객이 보기에는 조금 더 흥분될 수 있는 기분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조금 더 이유를 알고 나면 이 건방진 감상자들이란 앞의 내용을 보고는 후의 것에 눈을 부릅뜨고 지식에의 욕구를 채우려 노력하지만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흥행 대작을 두고 이딴 개똥 철학을 내뿜는 나란 인간이 가장 건방지지. .) 진정 알아야 할 것은 준석이 조직을 밟고 올라가는 모습이며 그와 같이 동수가 조직에서 큰놈이 되는 과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혹은 둘이 왜 그렇게 갑자기 사이가 안 좋아졌는지. .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들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이 '일처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준석이 발발 떠는 것만 보여주지 약물을 투여하는 건 보여주지 않는다. 동수를 죽이는 놈이 준석의 부하라는 건 알겠지만 어디서 나타난 놈인 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건 영화에서 관객을 멀리 두게 하는 장치에 가까운데 그게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상당히 거슬린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 해보자. 이 영화의 제목은 <친구>다.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귄 벗.
- 물론 이 말조차 의문스럽다. 잘려 나간 것 같다는 시퀀스 별 앞의 10분은 그들의 우정까지도 잘라버린 것처럼 친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한다. -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이야기를 해나가는 사람의 친구이다. 그들은 우리의 친구가 아닌 극중 화자의 친구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그들을 보지 말고 상택의 입장에서 그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상택이 보지 못한 것은 우리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화 대부분의 시간을 상택과 같은 입장에 있다. 상택이 보지 못한 것은 우리도 보지 못한다. 이게 바로 <친구>의 영화적 장치이다. <친구>는 '친구'의 눈을 통해서 본다는 것.

자. . 이제 조건부 실망이 무슨 말인지 알게다. 전자의 시각으로 보면 적잖이 실망했고 후자의 시각으로 보면 유명 배우들을 내세운 대형 영화치고는 voice over를 통한 감독의 모험이 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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