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로 오래전 얘긴데, 니는 기억나나? 옛날에 꼰대가 건달인 친구와 장의사인 친구가 있었던기라. 그리고 목폴라 짬매고 댕기는 범생이 친구와 그 옆에서 시다구 까대는 친구 녀석도 있었던기라. 바닷가에서 멱감다가 까만 튜브 타고 밀물에 밀려 나아가곤 했는데, 그때 뭔 얘기한 줄 아나?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수영시합하면 누가 이길까, 이런 내기 했던기라. 내는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니는 기억나나? 니는 누구 편 들었노? 괘안타. 우리 친구 아이가.

<친구>는 뽀대나는 화면과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로 인해 영화적인 재미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자신과 주인공들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영화다. 잊고 지내던 추억 속의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인터넷 사이트 '모교사랑'의 영화버전이랄까. 혹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부산버전이랄까. 1976년에서 1993년으로 이어지는 20년은 영화를 보는 이들을 노스탤지어로 가득하게 만든다.

4명의 친구 중 한 명은 분명 영화를 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필자로 말할 것 같으면... 동수와 상택의 중간 정도에 있었다. 상택처럼 모범생 같은 학교생활을 했으면서도 동수처럼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2인자 컴플렉스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학교 톱을 먹을 만큼 싸움을 잘 한 건 아니었지만, 맞고 사는 건 참지 못했다. 그런 필자에게도 추억의 친구가 있었으니 준석 만큼 멋진 놈은 아니었지만, 그 만큼이나 제멋에 사는 놈이었다. 영화를 보고 오는 길에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 녀석이 떠올랐다. 고속도로에서 길을 막고 서서 "친구야!"하고 불러보고 싶었다.

영화를 주관적 영화와 객관적 영화로 나눌 수 있다면, <친구>는 너무나 주관적인 영화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좋고 나쁨이 확실하다. 스토리도 특별하지 않고 건달 얘기도 뻔하고, 막판에 깜방에서 손바닥 마주치는 건 정말 유치하기까지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왜 내 가슴 한구석을 자극하는 걸까. 깡패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써야 멋있는 줄 알았는데,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 신기해서 그런 걸까. 장동건과 유오성이 만드는 카리스마 때문일까. 확실히 장동건이나 유오성이가 머리 민 만큼이나 연기는 쥑인다. 특히 장동건은 등장할 때마다 화면에 꽉 찬 느낌이다. 게다가 거기 등장하는 주현이나 기주봉, 이재용 같은 두목급들 연기도 끝내준다. 씨바 부산놈들 선거 때마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거 들으며 부산 사투리 죽어라고 싫었는데, 이 영화에서 부산 사투리는 왜 이렇게 정감이 넘치는 걸까.

이미 다른 저널들에서도 지적된 부분이긴 하지만, <친구>는 후반부가 아쉬운 영화다. 후반부의 뻔한 건달 이야기가 내 얘기처럼 다가오는 건 전반부의 학창시절 친구 이야기의 공이 큰데, 정작 장동건이 죽고 난 다음의 이야기는 그리 설득력이 없다. 그건 아마도 준석과 상택(서태화)의 관계가 생각보다 표리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준석과 동수에게서 느꼈던 팽팽한 긴장감과 우정이 상택과 준석에게서는 약했던 것. 그래서 마지막에 둘이 창을 마주보며 울먹이는 부분에서 쉽게 동화되지 않는다. 확실히 둘 사이에 단순히 약속으로 만들어지는 우정이 아닌 좀더 세부적인 묘사가 있어야 했다. 예컨대, 가정환경이나 성적 차이로 인한 어떤 컴플렉스나 갈등같은 것. 그런 것들로 인해 둘 사이가 좀더 끈끈하게 맺어졌다면, 마지막에 준석이 동수와 상택을 동시에 친구로 생각하는 것이 더 매끄러웠을 것이다.

이 영화가 전국관객 200만 명을 넘기는 것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두 가지다. 엄청난 물량공세의 승리라는 것, 그리고 역시 대한민국은 마초국가라는 것이다. 변변한 여성 캐릭터 하나 없는 영화를 이만큼 여성관객이 참아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일상에서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친구'에서 끌리는 참을 수 없는 단어의 매력이 있다고 해도, 보통 여성들에게 있어 '친구'와 건달의 세계는 다른 의미일텐데, 더구나 영상의 잔혹함이나 욕설에서는 거부반응을 보일 만도 한데 잘도 참는다. 그만큼 어릴 적부터 여성비하 발언에 익숙해져 있던 그들의 슬픈 추억 탓이겠지.

정말 <친구>는 남자들을 위한 영화다. 사나이 의리 이런 거 강조하는 영화다. 고등학교 때 화장실에서 담배 나눠 피고 야한 잡지 찢어서 나눠 갖던 친구들이 오랜만에 만나 손잡고 보면 좋아할 그런 영화다. 그때 담배빵 수두룩하게 당했었는데, 이런 생각하면서 보면 된다. 보고 나서는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면서 그때 그시절 짤짤이하면서 뽀찌 뜯어간 녀석 인생살이 들어주면 딱 좋다.

그만큼 <친구>는 감정이입하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준석, 동수, 상택 이 세 인물에 주로 초점을 맞춰 카메라는 쑥쑥 클로즈업으로 들어간다. 푸른색과 갈색의 톤 역시 추억을 자극하는 색이다. 70년대와 80년대를 표현하는 요소들 - 버스차장, 롤러장, 교복, 책가방, 벤허, 쌍절곤, 게임기, 소독차 - 역시 그때 그 시절 효과에 만점이다. 한 마디로 사람 냄새나는 영화.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 억수로 멋있는 말 아이가. 연기가 살아있는 만큼 그들이 내뱉는 대사 역시 살아 있다. <친구>에는 멋진 대사가 넘쳐난다. 장동건의 저 멋진 대사 "고마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를 비롯해서 살떨리는 대사 "니가 가라, 하와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준석이가 내 쥑이라카드나?", 유오성의 "니 죽고 싶나?", "쪽팔리서" "많이 컸네, 동수", 이재용의 "괘안타, 소독했다", 그리고 한 번쯤 담그고 오라는 투의 느긋한 살떨림들, 인턴사원 교육의 재치, 주번을 부르는 선생의 말투까지. 표준어로 했을 때 어색했을 그 느낌이 부산 사투리에 뭍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흥행성공하는 이 세상은 그리 '친구'가 많은 세상은 아닌 듯싶다. 흔히 하는 말로 진정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는데, 건물의 높이가 올라갈수록 친구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TV에서는 점점 인간 냄새가 사라지고 있고, 주먹다짐보다는 지폐 한 장이 더 위력을 발휘하는 세상이다. 곽경택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알려져 있는 <친구>는 이런 시대상황에서 더 매력적이다. 일 년에 한두 번 극장 가는 386세대 관객들에게 이런 기회는 얼마나 삶을 윤택하게 하는가.

<친구>의 대박으로 한국영화계는 1년에 한 편씩 한국영화사를 다시 쓰고 있다. 더구나 <친구>는 이전의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와 달리 북한이나 로맨스가 아닌 전혀 다른 소재와 18세 이상 관람가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더 고무적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영화의 관객층이 기존 20대 여성에서 30대 남성으로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한국영화는 이제 다시 막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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