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뜨고 있다. 현재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거의 40퍼센트대에 임박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올 해는 친구라든가, 엽기적인 그녀, 신라의 달밤 등의 소위 대박영화들이 몇 편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조심스런 판단을 내놓는 이도 있긴 하지만 한국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많아졌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제작자나 감독들이 신이나서 엄청난 돈을 때려부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잘 만들면 한국영화든 외국영화든 가리지 않고 관객이 든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돈을 많이 들일수록 좋은 영화, 잘 만든 영화가 나온다는 발상자체는 유아기적 발상이긴 하지만 어쨌든 당분간은 이런 블럭버스터급 영화들이 계속 제작될 것 같다.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엄청난 돈지랄로 쫄딱 망한 뒤 어느정도는 거품이 걷힐 것 같다....--;; )

'무사'는 그런 영화들의 선두주자격인 작품이다. 아마 한국 영화 최초로 제작비 50억원을 넘은 영화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충분히 돈들인 값을 하고 있다. ( 몇 년전의 '용병이반'도 러시아 로케로 찍으면서 15억정도 들여놓구 엄청난 제작비 어쩌구 했는데 세상 참.... )

일단 2시간 45분정도의 러닝타임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배우들의 연기또한 상당히 괜찮았다. 더군다나 어느정도 그 테크닉을 인정받은 김성수와 김형구 촬영감독의 고속과 저속을 적절히 배합한 촬영방법은 전투시의 긴박감을 힘있게 그려내고 있다. ( 촬영에 있어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 빌어먹을 스텝프린팅을 전투장면에서 쓰지 않은 것이다. )

그리고 와이어 액션을 배제하고 칼과 칼이 맞부딪히며 대갈통이 날아가고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등, 둔탁한 병기의 느낌과 전장의 리얼함을 살리고 있는 세세한 요소까지 영화는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없었던 ( 혹은 탁군이 보지 못했던 ) '때깔나는' 화면빨을 자랑하고 있다.

시네마스코프로 찍은 풍경은 웅장한 매력을 풍기며, 직접 세트로 지었다는 해안토성 역시 말로 익히 들어왔던 것처럼 마치 그 자리에 수백년은 계속 서 있었던 듯, 자연스럽다.

이런 '돈들인 티' 팍팍나는 여러 요소들이 관객을, 아니 탁군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면 영화 내적인 요소인 내용등은 어떨것인가.

우선 말하기 전에 한가지만 얘기하자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려면 두가지 사항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영웅본색'이나 '와일드 번치'등의 영화에서 풍겼던 정서를 그대로 이해하고 있을 것.
둘째, 이 영화가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무협액션영화임을 알고 있을 것.

뭐, 하나가 맘에 안들면 별 세세한 것까지 다 눈에 거슬린다고 역사적 고증이 어쩌네 하고 딴지걸면 대체 무슨 영화를 바라는 것인지. 실제로 지금 이땅에 고려시대 사람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데 그 때 사람들이 사투리를 안 썼다고 어떻게 확신하는지 잘 모르겠다.

실제로 김유신이 말타면서 '빨리 활 쏘라카이 뭉디 니 뭐하노? '라며 병사들을 독려했을지, 계백 장군의 부하들이 ' 장군님 활 날라와유~ '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더군다나 영화속에서 인물들의 사투리가 그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데 한가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면야 굳이 고증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딴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도 생각이고 내 생각도 생각이고. )

일단 무협액션이라는 것을 숙지한 상태라면 영화는 보기에 한 결 편해질 것이다.

그리고 첫번째로 얘기했던 정서에 관한 것은 후에 마무리지으면서 얘기하기로 하고 ( 커걱...이런 두서없는.... ) 일단 탁군이 받아들인 무사의 주제는 흔히 알려진대로 '집으로 가는 길'의 험난한 여정이 아니라 그 여정을 배경으로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영화내내 집으로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지만 그 이유는 '집'이라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모두 자신들이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여기에서 그들의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지금 그들의 옆에 있는 한족의 유랑민은 정확히 일치해진다. ( 어머니, 만삭의 부인, 아이의 엄마등 ) 그래서 무사들은 죽으면서도 웃으면서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다 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건 사랑놀음이 아닌 주인공들의 생명을 담보로 내건 전투에서 동기부여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영화속에서 자신의 동기부여 요소가 없었던 최후의 생존자가 배를 타고 떠나는 마지막 장면 또한 어째서 이 사람이 살아남았는지 ( 시나리오상에서 ) 어느정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까전에 얘기하려던 정서문제를 얘기하자면 탁군은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가 ' 개죽음의 미적 승화'에 바탕을 둔 샘 페킨파나 오우삼의 영화정서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와일드 번치'에서는 자신의 동료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들은 흉악한 범죄자들이다. ) 단 4명이서 200명의 멕시코 군대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며 '영웅본색'에서는 개도 안 먹는다는 의리를 위해, 도망가던 주윤발이 다시 배를 돌린다.

분명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개죽음일뿐이지만 이 두 명의 감독은 그것을 미적으로 아름답고 비장하게 승화시키고 있고,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명나라 공주나 한족 유랑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무사들또한 이들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위에 열거한 영화들을 보며 그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는 주인공들의 동기부여가 없는 말도 안되는 헛짓거리로 비쳐지기 쉽상일 것이다.
( 뭐, 안 그럴수도 있지...... )

더군다나 김성수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가 '와일드 번치'와 '7인의 사무라이'같은 영화라니 위에 말한 사실들은 더 명확해진다.

마지막으로 딱 두가지만 욕하도록 하자.

첫번째로, 주진모는 연기야 어찌됐건 캐릭터 구축의 실패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차라리 냉정한 장군의 고뇌같은 것이 더 촛점을 맞췄다면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겠으나, 그저 질투에 눈 먼 속좁은 남정네 정도로 밖에 비치지 않고 있다.

두번째로, 다 찍은 영화를 1시간이나 드러냈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처음이라지만 거의 수십억에 달하는 돈을 책임지고 있는 감독이란 사람이 그렇게 개고생하면서 찍은 필름을 버렸다는건 장편 영화를 세편이나 찍어본 감독이 할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할 말이 많더라도 머리속에 그려진 상영시간 정도는 알고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 1시간에 들인 돈과 배우,스텝들의 고생에 대한 욕이란 욕은 다 들어먹어도 모자랄 정도일 것이다. ( 그러면서도 잘린 필름이 아깝다느니 어쨌다느니 한심하게스리....왜, 한 삼,사년 지나서 디렉터스 컷이라도 낼라 그러우? )

이러쿵 저러쿵 떠들었어도 영화는 탁군의 마음에 쏙 들었다. 깡패 살인자를 전나게 미화한 '친구'나 원작이 있건없건간에 한국 코믹멜로의 고질적인 특성인 마지막의 감정의 오버를 보여주며 짜증을 유발했던 '엽기적인 그녀'나 별다른 얘기거리 없이 배우들의 연기로 웃겨보려 노력한 '신라의 달밤 ( 여기서 잠깐. 탁군은 캐릭터 코미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김상진 감독의 전작인 '주유소 습격사건'을 보며 딱 한 번 웃었다. 원래 그런 영화인가? --;; ) 같은 영화들보다 적어도 수십억배는 더 재미있다.

그리고 어쨌든 개인의 생각은 개인의 생각. 다른 사람들이 재미없다면, 뭐 할 수없는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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