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사람이름을 전혀 외울 노력도, 능력도 없는 (특히나 외국사람들의 이름은 거기서 거기인거 같아서 더욱 모른다) 본인이 데이빗 린치라는 감독이름을 처음 제대로 접하고 기억한 건 '씨네라인'을 통해서였다. 양유창님 칼럼 중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소재로 다룬 칼럼에서 제대로 외웠다. 비디오 숍에 가서는 늘 볼까 말까 고민하던 영화 중 하나가 바로 매우 독특한 모습의 표지를 하고 있는 '이레이저헤드'였는데 그 감독이 데이빗 뭐시기라고 했다는 거, 그건 잘알고 있었으나 왠지 컬트적인 느낌을 풍기는 작품을 선뜻 뽑아보기에는 그때는 모험이였다.

하여튼 마음 먹고 간 비디오 숍에서 한쪽 구석에서 발견한 '로스트 하이웨이'는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채 그 음산한 분위기, 귀기라고 말해도 모자를 바 없는 그런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너무나 많은 영화 프로와 잡지에서 다뤄진 작품이라서 왠만큼의 사전 지식(감독이 어떠한 효과를 썼는가, 작품의 전체적인 톤이 어떠한가)을 가지고 보았으나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우선 충격이였다.

1. 뫼비우스의 띠

뫼비우스의 띠를 본 사람들은 다들 그 모양에 대해서 신기함을 가졌을 것이다. 에셔라는 판화가이며 미술가인 사람은 이 기묘한 입체를 즐겨 작품의 주제로 삼았는데 이 띠가 상징하는 바가 매우 깊고도 넓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작점이 결국 종점이 되는 기묘한 구조로 인해서 뫼비우스의 띠 같은 세계가 존재한다면 공간적으로도 순환이겠지만 시간으로도 순환이겠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황하게 뫼비우스에 대해서 이야기한 이유는 로스트 하이웨이가 기본적으로 이 띠와 같은 구조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어느날 이상한 초인벨 소리를 듣게 된다. 누군가 죽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는 그러한 사람을 전혀 모른다. 결국 이야기가 진행되고서 밝혀지는 사실은 그가 그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다른사람이 되어서 말이다. 여기서 오래전의 믿음, 즉 가장 확실하고 명증한 것은 '나'라는 주체라는 믿음이 붕괴된다. 사건은 물론 주인공 역시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나는지 모르는 영원한 순환의 고리에 갇히게 된다. 더군다나 더욱 기묘한 것은 이 상황을 바라보는 경찰에게 있어서 시간은 공히 직선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의 설정은 주인공의 애인으로 등장하는 인물에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초반에는 살해당한 부인으로 등장하고 중반 이후에는 금발의 마피아 정부로 등장한다. 그녀는 둘인지 한명이 같이 하는지 전혀모르는 상황이다. 금발의 그녀와 흑발의 그녀, 둘은 하나인지 둘인지 구분할 수 없다. 이러한 혼돈은 노출이 심한 조명과 역광, 스모그와 푸른 색과 붉은 색의 조명과 어울려 환상적인 모습으로 묘사된다. 현실과 환상은 작품전체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

'일어난 그대로로 기억하지 않는다'

2. 환상과 현실 그 사이의 가로지름

환상과 현실이 뚜렷한 구분을 사람들은 일관성에서 찾는다고들 한다. 만약 우리가 환상의 대표적인 현상인 꿈을 매일 똑같은 내용으로 조금씩 진척되는 시리즈물로 꾼다면 우리는 절대 꿈을 꿈이라고 부르지 않고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고민은 이런 지점에 이르지 않은채로 스너프 필름 제작자를 죽인다. 결국 매우 윤리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본 작품에서 왜 환상적인 공간의 연출에 그렇게 목을 매었는가하는 의문에 다다르게 된다. 결국 내러티브를 감지할 수 있는 부분들을 감독이 말하고자한 부분이 아니라 그 외의 곳들이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곳이 아니였던가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그렇다면 감독에게서 환상과 현실, 그 사이의 균열은 어떠한 의미인가? 그것은 흔하게 지적되는 도피적 감성이나 욕망을 최대화하여 충족하는 곳이 아니라 두 세계 모두를 현실로 인정하자는 이야기인 듯 싶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매우 현실성이 없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그가 예술적인 지향점으로 삼는 명제일뿐 정치적 성격을 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감독의 작품 세계가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천착하는 문제, 즉 나의 자아는 확실한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누구나 한번쯤 회의적인 시각으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라는 대답을 해본 적이 있기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는 술에 취해서 필름이 끊어졌을때의 당혹감이나 비몽사몽간에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한 적도 있다. 가위에 눌려본적도 있으며 헛것을 본 적도 있다.

3. 그저

영화라는 매체가 다른 매체와 다르게 뛰어난 점은 그것이 현실을 가장 뛰어나게 모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각적인 정보 뿐만아니라 청각적인 정보도 제공한다. 곧 후각적인 정보까지도 제공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영화적인 특성으로 인해서 영화는 엔터테이먼트적인 특성의 산업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한국 사회에서의 변화만도 아니며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과연 옳은 것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옳다 그르다의 문제를 떠나 효율적인 것인가라는 생각 말이다. '고양이를 부탁해'나 '라이방',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문제를 두고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가장 효율적이고 가능성, 대중성이 뛰어난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뤄질 수 있는 폭이 상업적인 이유로 인해 코미디나 멜로 정도의 한정된 장르로 좁혀진다면 이처럼 비효율적인 일이 어디있겠는가? 길위 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지속적으로 등한시하는 문제, 즉 자기는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삭제되어 있는 것처럼 한국영화는 어느새 길을 잃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차를 산거까지 좋다. 기름도 많고 갈곳도 많다. 그런데 어느새 운전자 스스로가 누구인지 모르는데다가 길도 한곳으로 고정되어 버린채로라면 드라이브라고 할 수 있는가?

ps. 쓰고나니 정말 어지러운 글이 되어버렸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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