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와 한 남자가 인터넷을 통해 만난다. 그것은 오로지 "섹스(SEX)"를 목적에 둔 일회성의 만남이자 호기심 어린 장난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의 전반에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은 호기심만 잔뜩 웅크리고 있는 우리시대의 청소년들도 아니고 20대 초반의 그 돼먹지 못한, 세상에 대한 이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싸가지 없는 요즘 젊은것들의 모습도 아니다. 그들은 어느 정도의 지긋함이 느껴지는 나와 비스무레한 30대의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나타나는 그들의 표정과 얼굴은 다분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호기심의 모습과는 다른 차분하고 홀가분한 어떤 표정인 것이다.

영화는 인터뷰로 시작된다. "어떻게 만났느냐?" , "어떻게 섹스를 나누었느냐?" 첫 질문들도 다분히 그들을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그런 전제를 두고 내뱉는 질문들 같다. 그러나, 주인공들이 말하는 대답은 이러한 편견을 하나씩 벗겨낸다.

처음 그들은 커피숍에서 만났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고 첫눈에 서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호텔 방으로 가서 주인의 눈총을 뒤로하고 고정 숙박객으로 처음 '그 방(the Room)'에 신고하게 된다. 그들이 방에서 뭘 했는지, 어떤 테크닉을 구사했는지 관객들은 알 수 없다. 다만, 일을 마치고 나오는 주인공들의 대사와 표정을 통해 그 긴장의 시간을 추측할 뿐이다. "오랫만에 했더니 허벅지가 결려요, 당신도 그래요?." "난, 허리가 좀 아픈데요." 이러한 대사만이 그들 섹스에 대해 관객들이 알 수 잇는 전부이다. 카메라는 절대 '그 방'을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이 들어간 방 문 앞에서 관객들의 시선만을 계속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럼, 이것이 왜, "포르노그래픽"인가? 진정한 "포르노그래픽"을 보여주기 위해 아직 감독은 그들의 행위를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고 관객들에게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행위는 중요하지만, 아직 볼 수 있을 만한 것은 못된다. 관객과 주인공을 차단하는 '그 방'의 <문(Door)>은 그럼으로써 이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기저(基底)가 된다. 현실과 영화를 가르려는, '현실 속의 사랑(the Love in this Reality)'과 '영화 속의 사랑(the Love in this Movie)'을 구분 지으려는 감독의 의도적인 경계장치인 것이다.

단지 육욕(肉慾)만을 위해 만난 이들은 서로간의 육체적인 결합을 통해 서로를 편하게 생각하게 되고 저녁식사와 같은 '정상적인(Normal)' 연인들의 연애행위로 코스를 옮아가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만남은 계속 이어지고 그들의 만남이 지속될수록 영화는 어떤 리듬감까지 더해간다. 이젠 호텔 주인도 그들을 전혀 개의치 않고 안중(眼中)에도 없다는 듯이 전화를 걸며 열쇠를 건네주고, 참으로 즐겁게 방으로 들어가는 거의 정상적인 연인과도 같은 상태가 된다. 지독한 건, 카메라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카메라는 여지없이 방문 복도 앞에 열중쉬어 한다. 그러다 여자가 먼저 중요한 발설(發說)을 남자에게 건넨다. '난, 정상적인 연애를 하고 싶다."고. 이건 철저히 계약위반(契約違反)이다. 단지 '섹스'가 목적 아니었는가.
'나는 아래쪽에 있지 않고 당신 위에 있겠다."고. 그리고 그들은 방금 전 섹스를 마친 '그 방'을 다시 찾아간다. 다시 하기 위해.. 이젠 정상적인 섹스를 벌이기 위해..

카메라의 움직임은 조금전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고정된 곳이 아닌, 주인공들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흔들리는 '핸드헬드(Hand-held)' 리듬으로 줄곧 따라간다. 그리고, 방에 다다랐을 때, 그 견고하던 방문을 여자가 열면서, 그 경계를 넘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함께 관객들도 드디어 그 방에 들어선다. 그들만이 나누었을 그 기나긴 섹스의 시간으로 얼룩진 그 방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침대에 누워 점차 정상적인 섹스를 벌이는 그 시간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 이 장면에 이르러 갑자기 영화의 대사가 없어졌다. 나는 이것이 그들만의 포르노를 보여주려는 영화의 본래 의도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극장의 스피커가 나간 것이었다. 제기럴..) 여자는 그녀의 말처럼 남자의 몸위로 자신의 몸을 곧추세운다. 그러고 선 점차 서로의 파동을 합쳐가면서 서서히 오르가즘을 더해간다. 예전의 그들만의 섹스와는 다른 그 무엇을 이루어가면서...이것이 감독이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는 포르노그래픽의 진정한 모습이다. 진정한 합일, 진정한 육체적 관계. 그 힘찬 사랑의 행위. 진정한 포르노그래픽은 참으로 건강(健康)하다. 유럽인들 특유의 신체를 갖은 주인공들이어서 그런지, 나는 줄곧 그들의 영화 속 행위를 보며, 마치 헬스클럽에서 보는 육체의 건강함과 아름다움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도 그 모든 것을 담아내기엔 너무도 부족한 것이었다. 진정한 사랑을 느끼면서도, 서로 그런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의 첫 단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그 감정의 '서투름'과 괜한 조급함으로 그들은 서로 다투게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삐지고 계속된 만남을 유지할 수 없을 현실적인 감정의 사랑단계에 이른다. 그리고 서로가 원한다면 다음주 목요일에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자고, 나름의 유예기간(猶豫期間)을 갖는데 합의한다. 아뿔사, 여자가 떠나간 다음에 남자는 그토록 몸을 섞은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 지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된다. 혼잡한 지하철 역사 안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결사적으로 따라잡아 보지만, 열차는 떠나고 다시 못 보게 될 운명에 처한다. 약속 일에 남자는 먼저 장소에 가 앉아있다. 여자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러나 여자는 오지 않는다. 당연히 그들의 관계는 이렇게 끝나게 된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런 감정의 흐트러짐 뒤에 다시 이 장소에 나타날 여자가 대체 누가 있겠는가? 한마디로 쫑이다. 이것이 당연하게 벌어지는 '현실 속의 사랑(the Love in this Reality)"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화(Movie)>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여자가 왔다. 그들은 다시 만났다. 그리고 다시 호텔로 향하고 호텔 복도에서 뜨거운 키스를, 애무를 나눈다. 일주일만에 그들은 서로 다시 달아오른 것이다.( 일주일 동안 참기가 얼마나 고역이었을 것인가?) 그리고 '그 방'에 들어서지만, 다시 뜨거운 사랑을 나누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노크 때문에 수포가 되고 만다. 예상치 못한 노인이 "당신들, 내방에서 뭐하는 거요..?" 라고 뚱딴지같은 질문을 보내는 것이다. 이 방을 그 노인은 '자신의 방'으로 알은 것이다. 방을 나간 노인은 복도에 고꾸라진다. 완전 헤프닝이다. 고꾸라진 체로 자신의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절대 부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 법(法). 초로에 처한 노인의 아내는 그들 주인공에게 자신과 남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 몰래, 평생동안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 온 남자. 원수같은 남편. 그리고, 다음날 아내는 자살한다.
주인공들이 사랑을 나눈 그 방은 그 노인에게는 질식할 만큼 현기증을 일으키는 '영화 속의 사랑'으로 얼룩진 방이었을 것이다. 현실속 사랑은 항상 영화 속의 사랑에 질식당하게 마련인 것이다. 노인은 자신의 방에서 그 햇짓거리(?)를 벌이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질식할 만한 위협을 느낀 것이다.
여자는 말한다. "영화 속에는 항상 절정의 사랑 밖에는 없다."고. 실제로 사랑을 나눌 때 좋고 안 좋은 것이 아닌, 몸은 따라하지만 어중간한 감정밖에는 없는 그런 사랑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 다음부터는 나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찌했건, 그들은 다시 서로간의 심판대에 섰고, 다시 헤어졌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고 서로에게 말함으로써.
여자는 진정으로 그와 함께 진정한 사랑을 할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 남자는 그녀와 만나면서 이전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고문을 가해도 그것은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 고 오히려 질문자에게 당황한 질문을 던진다.
여자는 그와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 무엇이었건 뭐가 상관이냐고 말한다.
영화를 보면서 줄곧 나와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사랑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영화는 현실적인 사랑에 관한 영화다. 또 그것이 영화 속의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감독과 주인공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사랑과 현실은 항상 괴리(乖離)일 수 밖에 없다. 씨팔, 내가 아는 최소한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