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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ront of your pillow
헤이안 시대, 한 궁녀가 있었다.
커다란 궁 안에서 그녀는 몹시 갑갑했다.
밤은 길었고 가까이엔 말을 걸 동무조차 없었다.
그녀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 그녀가 보았던 사물,
그녀가 느꼈던 감정들,
베개 머리에서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 내려갔다.
천 년의 시간이 지나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아버지는 작가,
딸이 생일을 맞을 때마다
그녀의 얼굴과 몸에 붓으로 글씨를 써주었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생명에 대해 느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한 궁녀의 영혼과 감정이 담긴 '필로우 북'을...
어머니의 목소리가 궁녀의 기쁨을 읽어 나갈 때
소녀는 목격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출판업자의 금지된 계약을...
필로우 북이란?
The Pillow Book이라는 영화 제목은 일본 문학의 걸작에서 따온 것. 영화 내내 헤이안 왕조의 시각적 이미지와 궁녀의 나레이션이 깔리며 주인공의 의식과 영상을 지배한다. 1000년, 책의 작가인 세이 쇼나곤은 헤이안 왕조의 한 황실에 있던 여인이며 황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의식과 기념 행사들을 극히 개인적인 목록으로 만들었고 자신이 목격한 애정 행각들을 아주 상세하게 표현한 일기를 썼다. 그 일기는 13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본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 이 책은 너랑 이름이 같은 나끼꼬란 여자가 쓴 거야. 네가 스물 여덞살이 되면 이 책을 지은지 꼭 쳔 년이 된단다...
나끼꼬(비비안 우)는 일본의 전통적 가정에서 서예가의 딸로 태어났다. 해마다 그녀의 생일이 오면, 아버지(오가카 켄)는 그녀의 얼굴에 나끼꼬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붓으로 써준다. 인간을 만들었을 때 그 인간의 이름을 써주었던, 그리고 자신의 창조물이 마음에 들면 자신의 이름을 써넣었다는 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끼꼬가 네 살이 되었을 때, 고모가 세이 쇼나곤의 '필로우 북'을 읽어준다. 그녀가 열거한 삶의 환희와 느낌들을 어린 나끼꼬는 알지 못 한다. 그리고 그날 나끼꼬는 아버지와 출판업자의 비밀스런 관계를 목격한다.
- 글을 쓰는 것은 평범하면서도 고귀한 일이어라. 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삶은 얼마나 절망적인가...
성장한 나끼꼬는 출판업자가 맺어준 남자와 애정없는 결혼을 한다. 그는 자신의 '필로우 북'을 쓰겠다는 나끼꼬의 소망을 비웃는다. 그가 그녀가 쓰던 '필로우 북'을 태워버린 날, 나끼꼬는 일본을 떠나 홍콩으로 향한다. 홍콩에서 유명한 모델로 부와 명성을 얻은 나끼꼬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서예의 즐거움을 일깨워 줄 연인을 찾아 방황하던 중 번역가 제롬(이완 맥그리거)을 만나고, 그로부터 종이가 아닌 붓이 되어보라는 충고를 듣고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녀의 첫번째 글은 출판을 거절당하고 그녀는 자신의 글을 거절한 출판업자가 아버지를 이용했던 그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 작별은 아름답고 고통스러워라. 왜 우리는 이토록 달콤한 고통과 쓰디쓴 즐거움을 감내해야 하는가...
제롬은 나끼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나끼꼬 역시 그의 격려 속에 글쓰기를 계속한다. 제롬의 제안에 따라 나끼꼬는 제롬의 몸에 자신의 글을 써서 출판업자에게 보내고, 제롬은 그녀의 아버지처럼 출판업자와 관계를 가진다. 나끼꼬는 제롬을 냉대하고 결국 제롬은 나끼꼬의 침실에서 자살한다. 그의 죽음과 함께 모든 소지품을 태우며 마음을 정리한 나끼꼬는 일본으로 돌아오지만 그녀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린다. 결국 출판업자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 나끼꼬...
1. 인간의 육체가 책이 되기까지 ...
소요시간, 1인당 평균 3~4시간:
배우들의 몸에 들어갈 텍스트가 결정되면 서예가들이 거기에 알맞은 서체를 찾았다. 그리고 서예 감독인 브로디 너이엔슈반더가 문자의 스타일과 강도, 위치 등을 감독하였다. 배우들의 몸에 쓰여지기 전 서예가들은 종이에 스케치를 했고 이 것은 다시 실물 크기의 마네킹에 옮겨졌다. 배우들의 몸은 미세한 흰 색연필로 구획이 그어졌다. 그리고 몸 전체에 글자가 쓰여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3~4시간이 걸렸다.
가장 비싼 책은?:
제6권, 연인의 책(the Book of the Lover). 여주인공의 삶에 자유와 문학적 야망을 심어준 젊은 번역가 제롬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나가코에 의해 쓰여진 13권의 책들 모두처럼 이 텍스트도 그리너웨이의 창작품이다. 남자 주인공의 피부에 쓰여진 글자들의 위엔 모두 24k의 금박이 붙여져 그 책에 소요된 비용은 추산이 불가능 할 정도.
가장 서예가들을 고심하게 한 책은?:
제13권, 죽음의 책(the Book of Death). 죽음의 위압적인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제작진이 고심 끝에 선택한 인물은 바로 스모 선수. 일본인들에겐 거대한 힘의 상징이지만 사실 그들은 개개인이 단명의 운명을 지니고 있어 가장 죽음과 근접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서예가들은 그의 몸에 새겨진 글씨들을 스모 대회의 전통적인 광고 문구 스타일로부터 따왔으며 그로 인해 글씨는 강하면서도 위엄과 힘이 느껴진다.
2. 소니의 기술이 영화와 만났다.
<필로우 북>은 일본 소니사의 기술합작이 이뤄진 작품. 소니 HD- TV 기술이 그리너웨이의 영상에 힘을 실어준 것. 영화 속에서 피부 위의 글쓰기가 스크린 위의 글쓰기와 겹치는 이중적인 작업의 통합을 비롯 피터 그리너웨이는 <필로우 북>에서 스크린의 비율을 끊임없이 전환해가며, 인서트 프레임, 오버레이 프레임, 칼라와 흑백의 전환 등을 택하여 텍스트를 겹치고, 이미지와 텍스트를 다중적으로 사용하며 현란한 테크놀로지 영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200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서예의 전통을 100년의 역사를 가진 영화언어에 의해 보여주기위해 10여년밖에 안된 컴퓨터 테크놀로지는 쓰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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