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이빗 O. 러셀
출연: 조지 클루니, 마크 윌버그, 아이스 큐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걸프전은 마치 게임장면처럼 어둠 속을 가르는 하얀 빛들의 향연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걸프전처럼 선과 악이 명확하게 드러난 신성한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단순하게 걸프전을 동네 어린이들의 싸움으로 비유해서 얘기해보자면 후세인이라는 한 악동이 힘없는 쿠웨이트를 때렸고 이에 분개한 골목대장 부시가 동네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그를 혼내준 일에 불과할 것이다.

베트남전 패전 이후, 정신적 혼란을 겪던 미국 국민들은 이 전쟁의 승리 그리고 당시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함께 겪으면서 <미국의 승리>라는 강한 자신감과 그동안의 고민에 대해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이 과정을 이끈 부시 대통령의 인기는 끝없이 올라갔고 결국 승리의 영광을 차지한다. 당시 한국을 포함한 여러나라의 언론들은 이 우리의 영원한 우방국가(?)를 위해 후세인이라는 인물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데 연일 노력을 쏟아부었고, TV는 전쟁의 참상을 전하기보다 헐리우드 영화보다 더욱 재미있는 스펙타클을 제공하는 도구가 되었다.

영화 <쓰리킹즈>는 이렇게 깨끗하고 신성한 전쟁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은 걸프전을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매우 선동적이며 풍자적이다. 영화는 걸프전이 <평화수호>라는 가면을 뒤집어 쓴 채 이루어진 <침략전쟁>이었음을 까발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까발림을 전제로 깐다. 사담(후세인)군은 포로로 잡힌 미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원한건 결국 이 원유 아니였어?"

정전협정이 맺어진 후, 후세인이 숨겨둔 금괴를 알려주는 보물지도를 우연히 손에 얻게 된 4명의 할 일 없는 군인들은 그것을 찾으러 말그대로 <여행>을 떠난다. 전투다운 전투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 군인들은 (왜냐하면 그들 또한 티비로 전쟁을 보았기에) 전투의 기쁨을 만회라도 하기 위한 것처럼 의 음악을 틀어놓은 채 재미로 총을 쏴고, 럭비공에 폭탄을 설치하고, 소를 적군삼아 훈련을 해본다. 그러니까 영화 <쓰리킹즈>는 처음부터 관객들이 이들 군인들을 부시로 대표되는 <미국>의 모습으로 봐주길 기대한다. 이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라라고 말이다.

이러한 영화 <쓰리킹즈>의 비판적 시각은 걸프전이 그전까지의 전쟁과는 다른 <미디어 전쟁>이었음을 고발하는 부분에서 특히 빛난다.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모습을 보라!) 피와 살이 튀는 살육의 비인간적 공간을 단순히 후방에 있는 자국민들의 시각적 만족, 즉 스펙타클을 제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언론은 결국 그들의 심리적 만족을 채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한 인식자체를 바꾸는데 톡톡한 자기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걸프전과 베트남전의 차이는 바로 그러한 <이미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결사형을 보여주는 사진과 어두운 밤공간을 하얀 모습으로 날아다니는 미사일을 보여주는 TV는 어떠한 감정의 차이를 발생시키는가)

그러나 제어장치없이 막가는 식의 풍자정신을 보여줄 것 같던 영화는 영화중반 사담군과 반란군이 (이들은 미국이 그들을 도와준다는 약속을 믿고 후세인 체제에 반대했다) 맞서는 상황을 통해 어부지리식으로 얻게 된 금괴를 돌연 포기하고 평화수호를 외치기 시작하면서 결국 영화가 비판하고자 했던 대상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버린다. 풍자를 유지하고 매서운 비판을 가능하게 할 매개체인 <금괴>를 포기함으로써 끝내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우드의 결말 그 스스로 원하지 않았던 <감상주의적 접근>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이들 엉뚱한 군인들의 행동을 다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풍자를 즐기던 관객들은 영화중반 이후 그들과 <동일시>되기를 강요받는다. 풍자정신과 감정몰입은 얼마나 상극인가!)

그리고 이것은 자기자신을 풍자대상으로 삼고 비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증명한다. 분명히 영화는 지적한다. 나쁜 놈은 후세인이란 것을, 만일 다른 점이 있다면 부시 또한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뿐. 하지만 여기에는 전쟁의 모든 책임을 전가시킨 희생양 각국의 두 대통령만 있을 뿐 (설마 이 둘만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걸프전 그 자체 그리고 그것을 묘사하는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사유는 없다.(기이하게도 계속 나타나는 후세인의 초상과 그곳이 사막이라는 사실만 뺀다면 이 영화 속 전쟁이 걸프전일 이유는 없어보인다)

그래서 영화 <쓰리킹즈>는 언론이 제공하는 스펙타클과 영웅주의의 가면을 쓴 위선적인 미국을 향해 발사하던 비판의 화살을 고스란히 스펙타클로 가득차고 소영웅을 창조하는 영화 그 자기자신에게 발사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쓰리킹즈>는 풍자극이라기보다 자멸극에 가까워보인다.

분명히 <쓰리킹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씬 레드라인>과는 다른 전쟁영화다. 영화는 스필버그처럼 휴머니즘을 전면으로 내세우지도 않고 또 테렌스 멜릭처럼 깊게 전쟁을 사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쓰리킹즈>는 전쟁을 소재로 삼은 채 그 중간지점에 서서 그저 <장난>을 치는 것만 같다. 장난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풍자의 의도는 드러나지만 그것이 치열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하지 않은 풍자란 무슨 소용히 있는가. 하지만 정작 우려스러운 것은 의도한 풍자가 실패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건 다시 시도하면 된다) 어쩌면 그냥 이것 자체를 즐기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걸프전은 그저 웃음의 소재였어. 그냥 한번 웃어보자" 라고 말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원칙없는 비판처럼 무서운 것이 또 어디있겠는가!

미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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