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아메리칸 / Le Divorce]. 마치 [페페 르 퓨] 만화의 대사들처럼 영어와 불어가 어색하게 뒤섞인 제목만으로도, 관객들은 이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뭔지는 몰라도 프랑스와 앵글로색슨 문화의 충돌에 대한 것이고 아마 이혼이라는 이벤트를 다루고 있을 거라는 거죠. 그리고 그 짐작은 정확히 맞습니다. 다이앤 존슨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미국인 아내와 프랑스인 남편의 이혼 과정을 통해 미국과 프랑스라는 두 나라의 문화 차이를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조금 더 자세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이자벨은 두번째 아기를 임신한 언니 록샌을 만나기 위해 파리를 방문합니다. 하지만 언니의 남편 샤를르-앙리는 러시아인 유부녀와 바람이 나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죠. 그러는 동안 이자벨은 시댁 친척인 유부남 에드가와 전형적인 프랑스식 불륜에 빠집니다.

존슨의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신대륙 미국과 구대륙 유럽의 문화 충돌이라는 소재는 상당히 헨리 제임스적입니다. 주인공이 달고 있는 이자벨이라는 이름도 [여인의 초상]의 이자벨 아처에서 빌려왔을지도 모르죠. 아마 이 현대 베스트셀러가 제임스 아이보리와 이스마엘 머천트의 시선을 끌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시대 배경은 그들이 자주 묘사하는 에드워드 왕조 시대에서 벗어나 있지만 다루는 주제는 특별히 다르지 않은 겁니다. 이 영화는 여전히 교양있는 사람들이 위트를 주고받는 'Comedy of Manner'입니다.

물론 이자벨 워커의 모험담이 헨리 제임스적인 깊이나 진지함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닙니다.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그러기엔 너무 가볍고 얇습니다. 영화는 하나의 사건과 주제를 깊이 파는 대신 수많은 사람들을 스케치하듯 가볍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화전쟁의 병사들인 것이죠.

영화는 프랑스와 미국의 문화 차이를 다루고 있지만 경계선에 서서 공평하게 양쪽을 분석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영화의 시선은 미국인의 것이고 분석 대상은 프랑스인들과 그들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 관점은 꽤 공격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프랑스인들 중 호감가는 인물들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에요. 록샌의 변호사로 나오는 베르트랑이 예외라면 예외일까요? 이 영화의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프랑스의 낡아빠진 가족법과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의 위선, 남성 중심주의에 휘말려 어쩔 줄 몰라하는 단순한 미국인들의 수난기입니다.

당연히 이야기는 프랑스인들에 대한 인류학적 고찰로 이어지는데, 전 그냥 대충 이치에 맞는 소리려니 생각하는 중입니다. 머천트-아이보리 패거리들은 모두 프랑스와 프랑스 사람들에 대해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니 다이앤 존슨의 원작이 그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면 영화화하지도 않았겠죠. 캐리커처화 되어 있고 공격적이긴 하지만 영화가 그리는 이들의 모습은 프랑스 부르주와 가족을 묘사한 다른 작품들과 크게 어긋나지도 않고요. 예를 들어 이 영화의 드 페르상 가족은 클로드 샤브롤 영화에 출연해도 별 문제 없이 그 안에 녹아들 겁니다. 오히려 뒤끝없는 [Le Divorce]가 샤브롤보다 관대하다면 관대하죠.

다른 머천트-아이보리 영화들처럼 [Le Divorce]는 좋은 배우들의 호연이 넘치는 정중하고 예절바르며 문화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뭔가 조금 모자란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마도 다이앤 존슨의 원작이 이들의 최선을 끌어낼만큼 깊이있는 작품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죠. 머천트-아이보리의 영화들은 원작이 좋으면 좋을수록 덕을 보니 말입니다. [Le Divorce]는 그냥 얄팍하고 가볍기만 합니다.

기타등등

1. 원래 위노나 라이더와 나탈리 포트만이 록샌과 이자벨로 캐스팅되었었지요.

2. 영어 자막을 담당한 앤드루 리트박은 제임스 아이보리의 파트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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