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반전없이 쓰려다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ㅡㅡ;;)

전직 형사였던 운전사 에디(존 쿠삭), 에디가 태우고 가던 신경질적인 여배우(레베카 드 모네이), 연쇄 살인범(제이크 부쉬)을 호송 중이던 로즈 형사(레이 리오타), 라스베가스를 탈출한 매춘부(아만다 피트)와 신혼부부, 말 없는 아이와 부모, 여기에 이들 모두가 갇히게 될 모텔 주인 조지까지.(제가 11명을 다 소개하고 말았네요. ㅡㅡ) 무협지도 아닌 다음에야 11명의 등장인물을 다 기억하기엔 과부하가 걸릴 일입니다만... 친절하게도 영화는 차례차례 등장 인물들의 숫자를 제거해줍니다. 마치 앙꼬만 남기고 먹어치운 단팥빵처럼 말미에 가면 딱 먹음직스런 캐릭터만 살아남죠. 그들 중에 범인이 있을 건 분명한데, 모두들 알리바이가 명확해요. 차라리 영화 속 지니의 말처럼 '이건 귀신이 한 짓이야'를 믿고싶을 정도. 하지만 이 퍼즐, 모든 시작이 있는 곳에 끝이 있을 텐데 말이죠.

무려 11명의 캐릭터를 일사불란하게 모텔로 몰아넣는 도입부를 보시길. 영화는 초반부터 이런 장르에 빠삭한 전문가 냄새를 풍깁니다. 이야기를 압축시키는 것보단 런닝 타임만 늘리는 관례에 기습적 한방을 날리죠. 인물들이 무작위로 선별된 게 아니라 어떤 인과 관계로 연결되었다는 단서를 제공하면서도 맵의 일부분밖에 보여주지 않아요. 사각사각 맵을 개척해가도 이 거대한 미스터리의 종국에 닿을지 확신할 수 없죠. 영화 <아이덴티티>는 단서를 공개함에 따라 미스터리의 바닥이 보이는 그런 범작이 아닙니다. '영화가 끝났을 때 새로운 공포가 시작된다'는 카피처럼 생명력 질긴 공포가 오랫동안 물고 늘어 질 일이죠.

퍼즐놀이의 진수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힌트를 얻은 영화는 소설이 가진 위력적인 도구를 활용합니다. 등장인물 모두 희생자도 될 수 있고 용의자도 될 수 있는 아이러니는 주구장창 내리는 폭우보다 긴장감 유지에 효과적이죠. 뿐만 아니라 단지 이야기를 차용한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캐릭터와 연기하는 배우에 대한 선입견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죠. 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존 쿠색은 '과하게' 정의로워서 관객들은 쉽게 믿음을 주지 않아요. 다른 영화를 통해서 뒤통수를 여러 번 맞았으니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죠. 악당을 자주 연기했던 레이 리오타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존 쿠색과 달리 이 캐릭터는 너무 의심스러운 행동만 한단 말이죠. 어느 누구도 맘 편히 믿을 수 없는 상황, 그것은 모텔에 갇힌 캐릭터나 관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강도 높은 반전에 내성이 생긴 관객에게 <아이덴티티>의 다중 자아는 100점 짜리 반전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지구상에 없는 새로운 어떤 것'을 요구하지만 <싸이코>나 <프리미멀 피어>의 이중자아에서 머릿수만 부풀린 결과니까요. 하지만 <아이덴티티>라는 이름의 퍼즐은 완성된 그림을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퍼즐을 직조해 가는 그 과정, 그 과정의 즐거움이 너무나도 선명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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