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ry의 영화읽기 #2

과잉의 미학... 창조주의 피조물에 대한 한없는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톰 크루즈

폴 토마스 앤더슨은 절제를 모른다. 그는 전작 <부기 나이트Boogie Nights98'>에서 이미 특유의 방만한 이야기 구조를 선보인바 있고, 자신에게 베를린 영화제 금공상을 안겨준 <매그놀리아>에선 그것을 자신의 연출 스타일화 하였다. 그의 과잉의 스타일은 단지 긴 서술구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매그놀리아>는 12명이 만들어내는 9개의 플롯을 쫓아가면서, 인물과 에피소드, 증폭된 감정을 폭풍우처럼 쏟아놓는다. 각각의 인물이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플롯의 구조는 과잉의 감정들에 의해 묶여진다. 줄리안 무어는 3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시종일관 히스테릭한 패닉상태에서 샌 패르난도 벨리를 헤집고 다니고, 톰 크루즈는 유혹하고 파괴하는seduce and destroy 섹스의 전도사에서, 자신을 겨냥한 위협에 과민한 공격성을 드러내는 상처받은 사내, 그리고는 결국 과거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앞에서 울부짖는 불안정한 인물로 변화무쌍한 연기를 선보인다. <매그놀리아>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이 창조한 캐릭터들은 모두들 과거로부터의 잔인한 상처에 신음하며, 그로부터 오는 감정의 격랑을 자신들의 창조자가 그들을 위해 마련한 무대 위에서 언제든지 폭포수처럼 쏟아 내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앤더슨은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94'> 이후 너무 멀리 온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크 올슨 Mark Olsen의 지적대로 <매그놀리아>는 절제를 모르고, 자기중심적이며, 자신이 대단한 줄 아는 근본적으로 감상적인 영화임에는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Sight&Sound, [KINO] 49th)

무엇보다도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은 자기중심적인 영화이다. <리노의 도박사>는 실제로 도박을 즐기던 그 자신의 경험이 투영된 것이며, <부기나이트>의 시간적 배경을 이루는 1977년부터 1984년은 감독 자신이 실제로 극장용 포르노영화에 탐닉하던 시기이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샌 페르난도 밸리는 <부기나이트>와 <매그놀리아>의 공간적 배경이 된다. 그는 태생적으로 쿠엔틴 타란티노와 같은 영화광 세대이기에, 그의 자기중심적인 성향은 그리 놀라운 것은 못될지도 모른다. 단지, 폴 토마스 앤더슨이 가지고 있는 영화광으로서의 영감의 원천들이 쿠엔틴 타란티노와는 조금 다른 곳들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타란티노가 느와르와 하드보일드 액션물, B급 영화들을 자양분으로 자신의 영화를 창조한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은 보다 성찰적인 감독들, 로버트 알트만, 마틴 스콜세지, 조나단 드미, 그리고 멀리는 프랑소와 트뤼포로부터 영화를 배웠다. <리노의 도박사>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캐릭터에 대한 세밀한 인식은 그가 타란티노와는 다른 별개의 영화적 토양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키워왔음을 드러낸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찾아 헤매는 진정한 영화광이라면, 폴 토마스 앤더슨은 영화 속에서 삶을 배운 영화세대이다. 따라서, 그의 영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비젼의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감독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미국사회를 바라보는 자신의 감수성을 곳곳에 드러낸다. 폴 토마스 앤더슨에게 그 자신의 영화는 B급 영화나, 느와르, 멜로 등의 어떤 장르로도 구분되어질 수 없는 '삶'이라는 세 시간 짜리 영화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가지는 문제의식은 그 자신의 갈등인 동시에, 90년대의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해결되지 않는 과거에서 기인한 문제이다. 그가 로버트 알트만의 적자라는 수식어는 <매그놀리아>를 이루는 병렬적인 구조가 가지는 <숏컷Short Cuts>과의 유사점에서 드러나기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사회에 대한 시선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시선의 폭은 알트만이 보여주는 너비와 깊이에는 한없이 모자라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이 증폭시키고 변주하는 가족의 문제는 현재 미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임에는 틀림없다. <부기나이트>에서 그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포르노산업으로부터 80년대가 도래하기 이전의 가족에 대한 향수와 대체가족에 의한 상처의 치유를 이야기할 때, 다음의 이야기가 90년대의 가족과 그 과거일 것이라는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의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그의 영화를 멜로 드라마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누구보다도 이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여러 명으로 나누고, 그들을 다시 통합하여 단일한 감성을 창조하고자 한다. 그것은 <매그놀리아>의 12명의 인물들이 한 사람의 창조주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며, 그들 모두가 한 사람의 다른 부분들임을 깨닫게 만든다. <숏컷>과의 차이점은 여기서 더욱 분명해진다. <숏컷>이 단절과 절제된 통합의 야박한 순간의 영화라면, <매그놀리아>는 단절의 가능한 통합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매그놀리아>의 장점은 이야기의 나눔보다는 통합의 방법에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보여주는 과잉의 플롯과 인물들이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인물의 분열된 모습일지라도, 그래서 실제 삶의 모습의 스펙트럼이라기 보다는 감독 자신의 주관적인 피조물들이며 근본적으로 감정 과잉의 산물일지라도, 그는 창조자로서 그가 창조한 인물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로버트 알트만은 <숏컷>에서의 인물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현실속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존재들이기에, 그들에게 향하는 연민의 시선을 절제한다. 그러나, 앤더슨은 자신의 캐릭터들에게 무절제한 연민의 시선을 드러낸다. 그의 이러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은 <부기나이트>에서도 이미 드러났던 것이며, 그의 특유의 연출 스타일로 알려져 있는 배우와의 긴밀한 관계형성과 영화적인 영향력은 그의 시나리오 기획단계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자로서의 애정은 <매그놀리아>를 통합하는 훌륭한 방법이 되어준다. 그것은 또 다른 요소의 과잉에 의해 드러난다.

영화에서 과잉되는 것은 플롯과 인물만이 아니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두드러지는 과잉은 음악의 사용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시종일관 산만하고, 일관된 흐름이 근본적으로 부재하는 인물들을 통합하는 매체로서 음악을 사용한다. 24시간동안 샌 페르난도 밸리라는 단일한 시공간 속에서 서로 연관되지 않고 진행되는 플롯들을 위해 초반 1시간 30분 동안 지속되는 에이미 만의 배경음악은 그들 모두가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중심축을 이룬다. 부재하는 일관된 나래티브의 빈공간을 음악이 대신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매그놀리아>가 무엇보다도 감정에 관한 영화임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폴 토마스 앤더슨에게 있어서 치밀한 개연성보다는 즉흥성이 가능한 AVID로 경쾌하게 편집되어진 자신의 영화를 통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였다. 그에게 음악은 마지막 비장의 무기였다. 분절된 나래티브의 통합에 있어서 앤더슨은 알트만에게서 또 한번 빚을 지게 되는데 그것은 알트만이 <숏컷>에서 사용한 지진 에피소드를 차용한 일기예보와 난데없이 떨어지는 개구리 비이다. 관객과 감독, 인물들이 모두 함께 듣고 있는, 동일하게 느끼고 있는 음악적 정서와, 개별적 인물들이 공유하게 되는 동일한 경험들, 날씨, 기상재해등은 그들을 하나의 관계로 묶어둔다. 영화속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별개의 플롯속에 존재하지만, 그들이 동일한 시공간에서 경험하는 사건은 그들이 하나의 삶의 공간에 있음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나래티브구조 있어서 그가 제시하고 있는 전략은 초반 세 개의 우연에 관한 일화에 많은 부분을 기대야 할만큼 허술하지만, 동시에 그 허술함은 영화를 영화의 구조가 아닌 삶의 구조속에 있도록 만든다. 영화적 나래티브 구조에 익숙한 관객은 <매그놀리아>가 가지는 허술함 때문에 비판적이 되지만, 감독은 매순간을 휘어잡을 수 있는 훌륭한 연기력을 갖춘 연기자들 덕분에 그러한 허술함을 봉인하며, 삶의 우연성을 드러내는데 성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매그놀리아>는 폴 토마스 앤더슨다운 작품이다. 모든 감독들이 영화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앤더슨의 경우에 그의 장기는 인물의 창조이다. 그는 마치 샌 패르난도 밸리 곳곳에 그 인물의 씨앗을 뿌려놓고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카메라로 그들을 이어놓기만 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가 창조하는 인물들이 그의 내면에 충적된 인물들에 대한 단상들의 재구성이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사회의 중심 이데올로기인 가족의 주위를 맴도는 것은, 그의 영화가 이데올로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폴 토마스 앤더슨 자신이 캘리포니아 미국 중산층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분명히 개인적이면서, 미국적인 영화이다. <부기나이트> 또한 그 자신이 가지고 있던 포르노 산업에 대한 향수 어린 기억인 동시에, 가족과 돌아온 탕아에 대한 하나의 드라마였으며, 실제 살아 숨쉬는 인물들의 이야기였다. 그것은 자신의 내면의 감수성에 대한 기록이었고, 덕 디글러와 그의 유사 가족들은 포르노 스타이기 이전에 잃어버린 미국의 가족의 원형이었다. <매그놀리아>에서는 더 나아가 아버지들은 자식들을 버리고, 강간하며, 붕괴된 가족들 속에서 우연이 가져다준 타인의 위로만이 유일한 희망의 가능성이 되어버린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에서 스토리는 플롯이 9개이건 한 개이건 단일하다. 그것은 미국에 대한, 미국에서 자란 한 젊은이의 시선에 의한 영화이다. 그가 키워낸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미국의 과거 때문에 상처받았으며, 그것으로부터 고통받고 치유으 lrksmd성을 우연히 발견한다.

<매그놀리아>는 자기연민의 감정으로 가득찬 영화이다. 그 곳의 인물들은 샌 패르난도 밸리에 실제로 살고 있는 인물들이 아니라, 샌 패르난도 밸리의 매그놀리아가 Magnolia Street를 중심으로 구성된 허구의 인물들임에는 분명하다. 삶에서 퍼온 인물들이 아닌 죽어있는 인물들에게 현실감을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을 중심으로 퍼지는 그럴듯한 감정이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만은 분명 90면의 미국이 느끼는 가족에 대한 멜로적 감성과 동일한 것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자신의 인물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들에게 위로의 노래를 들려주고 관객은 그 노래를 어느새 함께 따라 부른다. 분명히 감독은 관객들에게도 그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한다. <숏컷>이 메말라 있으며 단절되어 있으며 삶의 우연성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그 감성이 실랄한 것은 알트만이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매그놀리아>는 젊은 알트만이 만든 <숏컷>일 수도 잇다. 그 속에서 감독은 또 하나의 인물로서의 카메라로 인물들과 함께 샌 패르난도 밸리에 산다. <메그놀리아>가 <숏컷>과 달리 삶에 대한 스케치가 아니라, 창조자와 피조물사이의 애정이 넘처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맞지 않는 일기예보와 우연의 일상, 황당한 개구리 비는 앤더슨이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얼마든지 던져줄 수 있는 모습들이다. 앤더슨 자신이 모두에게 에이미 만의 을 들려주려 했듯이, 개구리 비는 앤더슨이 자신의 인물들에게 보내는 코믹한 화애의 메시지이다. 앤더슨은 사실감에 얽매이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인물에게 생명력을 주고, 인물의 감정을 여실히 드러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사람에 관한 영화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플롯상으로 영화의 시작과 끝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 시간은 24시간 이상 지나지 않았다. 어떤 감독도 자신의 인물들에 생명력을 불어놓고 그들을 이렇게 사랑한 적은 없었다. 이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가 그러하듯이 창조자의 임무는 거북스러우리만큼 침묵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앤더슨은 코웃음을 치며 창조주가 직접 피조물을 사랑한다. 과잉의 미학은 인물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그들의 사랑은 세계를 개구리 비로 구원한다. 그것이 아버지 세대의 몰락과 가족의 붕괴, 죄의식의 세계속에서 한 젊은 감독이 거침없이 외치는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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