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사랑의 언약 <냉정과 열정사이>
- 이탈리아의 세렌디피티 '두오모 성당'의 두 연인


아오이: 피렌체에 있는 두오모 대성당은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서른번 째 생일날, 나와 함께 거기 가줄 거지?
준세이: 응.
아오이 : 언제?
준세이 : 멋 훗날..


현실에서도 영화 <세렌디피티>와 이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여자가 남자보다 운명적 사랑을 더 믿는 것일까..

개봉 전부터 일본에서 최고 흥행작을 자처하며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첨병으로 개봉된 <냉정과 열정사이>(나가에 이사무 감독)는 최소한 국내 개봉시 전국 관객 80만 명은 예상했지만 20만 명이라는 기대보다 못 미치는 성적으로 극장 개봉을 마치고 얼마 전 비디오로 출시됐다.

나의 작은 연애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준세이(타케노우치 유타카)는 나를 많이 닮았다. 두번 씩이나 실패한 것도 그렇고 융통성 없이 쉽게 살아아가는 데 익숙하지 못한 모습까지. 문학도가 화가의 길을 든 것이나 건축을 전공한 내가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나..

이런 얘길 들었다. "가족과 사랑이 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거냐"고. 어떤 사람에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원작 소설 속의 준세이에게도 내게도, 누가 될지 모르지만 소박한 꿈을 갖고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는 현실이다.

연애는 역시 <냉정과 열정사이>의 두 주인공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에 시작해야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있고, 가능하다면 준세이처럼 마빈처럼 주저하지 말고 결혼도 바로 저질러야 한다는 충고를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그럴까 요즘 DVD 매장을 찾는 연인들은 20대 초반이 많다, 그 사랑 역시 오래 지속되리라 믿고 있는..

아무것도 몰랐던 대학 1학년 때, 언제나 혼자인 여자 아오이(진혜림)와 조금은 우유부단한 남자 준세이는 같은 학교에서 만나게 된다. 청년 시절 한번쯤 해봄직한 사랑의 열병이 서투른 첼로 연주자를 매개로 해 둘에게 다가온다. 시간은 흘러 이탈리아 피렌체 스튜디오에서 회화 복원사로 일하는 준세이와 보석가게에서 일하는 아오이 우연히 마주치는데..


아오이 : 나, 잊었어. 과거는 다 잊었다고.
난 지금 너무 행복해


아오이를 보기 위해 밀라노로 달려간 준세이에게 아오이가 던진 말이다. 물론, 여자의 강한 부정의 말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오이 역시 준세이를 잊었다고 하나 그녀는 10년 전 약속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여자이다.

헤어진 옛 연인과 재회하려는 기대는 무너지고 피렌체로 돌아온 준세이에게 안좋은 일들이 계속 겹친다. 직장마저 잃고 살고 있던 집마저 처분하고 도쿄로 돌아오는 준세이. 이 영화에는 유난히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이 많다. 공간적인 배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치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친구로부터 그녀가 떠난 이유를 알게 된 도쿄의 준세이는 그녀에게 상당히 긴 분량의 편지를 보내고, 그녀와의 추억을 하나하나 손꼽는 준세이의 편지를 따라 아오이가 읽으며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너무 다른 성격의 두 도시 밀라노와 피렌체, 과거의 흔적은 모두 사라져버린 도쿄를 배경으로 두 사람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이어진다.

준세이는 도쿄에서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준세이의 편지에 확신을 가진 아오이 역시 남자친구 마빈과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된다. 준세이는 자기가 배우던 스승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인해 이탈리아로 건너온다. 그를 좋아했던 스승 조반나가 죽어서 둘의 사랑을 연결시키려는 것이었을까.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숨기지만 둘 사이의 위기 때마다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화가 출신 준세이 할아버지나 아오이의 남자친구 마빈, 그녀가 일하는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갈등을 해소시킨다. 흔들리던 아오이와 융통성 없어 보이는 준세이에게 자극을 주며 이들을 운명적인 만남까지 이끈다.

준세이는 피렌체에서 한편으론 스승의 유업을 이어 중세회화의 복원화가로,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옛 사랑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나날을 보낸다. 그 때, 과거 아오이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두오모 성당으로 발길을 돌리고 운명적으로 재회한다.

둘은 재회해 사랑을 나누지만 유통기한은 단 하루..혼란스러운 준세이의 태도에 아오이는 다시 사랑을 부정하게 되고 밀라노로 떠난다. 국내 가수 HEY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익숙히 봤던 장면들 뒤로 흐르는 음악은 국내 가요와 또 다른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다만, 국내에서 좀 더 좋은 결과를 가졌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문득, 준세이가 올랐던 성당의 종루에 올라가 더 넓은 하늘과 세계를 바라보고 싶다. 그 곳이 고층빌딩의 타워가 아니라도..사람이 붐비는 곳 가운데 서서 누군가를 기다려보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아오이를..

두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과연 둘의 사랑이 이어질 수 있을지 끝까지 놓칠 수 없다. '다시 한번 너를 찾을 수 있다면..', 사랑에 있어 한 박자 늦는 남자들을 대표하는 준세이의 심정이 되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