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이(진혜림)와 준세이(다케노우치 유타카)는 지금 ‘냉정과 열정’사이에 서 있습니다. 한때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이 커플은 아오이의 중절 수술과 관련된 오해로 ‘냉정’한 이별을 하게 되었죠. 그 뒤 둘 모두 새로운 상대를 만났지만 다시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들진 못하는 군요. ‘미련’이란 녀석과 관련된 18번 모드죠. 이들은 헤어지기 전에 약속을 한 가지 했었는데, 아오이의 서른 번째 생일날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기로 했었죠. ‘약속 장소에 나타날까요? 안 나타날까요?’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겠습니다. ㅡㅡ

그림보다 예쁜 액자

<냉정과 열정사이>는 ‘새로 시작하는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닙니다. 헤어진 상태에서 다시 재회하는 시점이 영화의 시작인 것은 그 때문이죠. 이미 마침표를 찍어둔 상태라서 ‘한때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건 이들에게 ‘미련’에 불과합니다. 상대에 대한 원망보다는 ‘미련’ 더 크기 때문에 두 번째 사랑조차 가로막혀 있죠.

준세이의 직업이 ‘화가’가 아니라 ‘회화 복원사’인 것도 그와 관계가 있어요. 이미 과거 완료형이 된 것들, 수명이 다한 것들, 재창조가 필요한 것들이 그가 다룰 재료들이죠. 창조보다 더 가치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좀 쓸쓸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분위기를 간직하고 복원된 그림은 시간을 되돌릴만한 에너지를 내뿜죠. 아오이와 준세이의 재결합은 그래서 더욱 기다려지는 일입니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그림을 감상하는데 정작 그림보다 액자에 눈이 더 간다면 그건 감상자 잘못이 아닙니다. 어디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관광엽서가 될 것 같은 피렌체와 밀라노 풍경은 <냉정과 열정사이>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죠. 영화는 선남선녀들의 재결합만큼이나 이탈리아 관광 가이드 임무를 신성하게 여깁니다. 워낙에 예쁘게 포장된 사랑 이야기라서 풍경담기에 한 눈 파는 게 거슬리지는 않는군요.

아오이와 준세이가 ‘냉정과 열정사이’에 서 있기 때문에 영화는 유독 ‘봄’에만 집중을 합니다. 회상하는 계절도, 앞으로 진행되는 계절도 모두 봄이죠. 봄을 따뜻한 계절이라고 느끼는 게 저 만의 인식은 아닐 겁니다. 이 커플이 시간에 몸을 맡겨두기만 한다면 ‘열정’적인 계절을 맞이하는 건 자연의 순리입니다. 관객들이 아오이와 준세이의 사랑에 가능성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죠. 원망을 잠재우고, 미련을 사랑으로 되살리는 게 시간의 힘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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