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의 [달빛 그림자]란 소설을 보면 여자친구가 죽자 그녀의 세일러복을 입고 등교하는 남학생이 나온다. 이 별스런 행동은 처음엔 황당케 하나 차츰 충격적 슬픔을 이겨내려는 주인공의 처절한 행동에 동화되어 눈물 감출 길 없게 된다.

<...ing>에도 유사한 장면이 있다. 여자친구가 학교 앞 도로를 건너다 죽자, 이후 그녀의 남자친구가 매일 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영화에서 가장 슬픈 이 장면엔 여주인공 민아(임수정)의 바람이 담겨있기도 하다. "저게 뭐야, 사랑에 미쳐가지구"라고 말했던 민아는 죽기 전 아름다운 사랑을 선물 받는다.

<…ing>은 시한부 삶을 사는 여자아이를 위해 그녀의 엄마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이승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려는 이야기다. 이 시한부 삶이란 소재는 드라마는 물론이고 영화에서도 아주 닳고 닳아버린 진부한 소재이지만, 20대 신예 이언희 감독은 데뷔작으로 기꺼이 이를 영화화한다. 연출의 힘만 보여주면 욕은 먹지 않을 것이니, 이언희 감독은 모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여성들끼리 더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의 교류를 잘 심고자 한다. 실제 <…ing>이 보여주는 모녀관계와 여고생 캐릭터 민아의 묘사는 시대 공기를 잘 포착하고 있는 근래 청춘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기운이다.

그러나 영화는 '슬프게 하기 전략의 과ing'으로 인해 섬세한 감정의 결을 은근슬쩍 흘려놓지 못하고 종종 들키고 만다. 민아와 영재(김래원)의 사랑이 가장 진부한 설정으로 넘쳐나는데 그들의 사랑은 오랜 멜로드라마의 공식에 대입해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는 아쉬움을 준다. 그들의 몸은 2003년에 있는데 감성은 옛 멜로 코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남자가 접근하는 방식이나 여자가 넘어가는 방식, 그리고 연애의 자잘한 에피소드와 이별까지. 또 뒤늦게 사진으로 추억하기나 불길한 암시를 잡지 별점운세의 '행운의 숫자 4', '건강조심' 등으로 장치 해 놓은 것은 도저히 20대 감독이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구태의연하다.

여기에 덧붙여 개인적인 불만은 민아의 학급풍경에서 여학생들이 전부 예쁜 외모를 가졌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기론 현실적인 풍경은 <여섯개의 시선> 중 임순례 감독의 단편인 <그녀의 무게> 쪽이 더 맞을텐데 말이다.

아무래도 감독이 신경쓰고 있는 건 아름다운 영상 쪽인 것 같다. 해외 로케 및 힘들여 찍었을 예쁜 장면 대부분은 꼭 필요한 장면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장면은 민아의 슬픔과 사랑과 위안에 결정적인 뒷그림이 되지 못한다. 아무래도 데뷔작이다 보니, 여러 타협점을 찾은 것 같은데 눈치 보지 말고 조금 더 조금 더 자기 색깔과 얘기를 드러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

※덧붙이기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임수정의 캐스팅은 완벽하다. 그런데 스물넷이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 여고생 같았는데 김래원보다 누나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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