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 전, 관객의 태도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고 봐야 영화의 이해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타입, 또 하나는 절대 정보를 접하지 않으려고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 나오면 채널을 바꾸고, 영화를 미리 본 사람이 이야기를 할라치면 귀를 막아버리는 타입이죠. 제 경우엔 후자입니다. 그런데 이 <고양이의 보은>은 왠지 제목부터 시시했습니다. 고양이의 보은? 고양이 살려줘서 은혜 갚는 얘기 아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도 아니고, 그의 추천을 받은 신인감독의 작품이라니. 혹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류작이 아닌가 심히 의심됐죠.

오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부터 전 재치 넘치는 이야기에 귀먹고 환상적인 동화 속에서 눈멀습니다. 역시 문제는, 컨텐츠였습니다. 그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에 푹 빠지고 말았던 거죠.

영화관을 나오면서 얼마 전에 본 <원더풀 데이즈> 생각이 났습니다. 매끄러운 금속성의 느낌을 지닌 이 영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쥬얼에 비해 시나리오가 약하다' 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경우 컨텐츠가 빈약하다는 지적은 너무나 많이 받아왔습니다. 물론 '영화는 미장센이다' 라는 김문생 감독의 말을 고려한다면 <원더풀 데이즈>는 그 목적에 부합한 영화겠지만요.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매체가 발달하면 할수록, 더 중요해지는 건 컨텐츠입니다. '원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use)' 의 시대. 하나의 소재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하여 확대 재생산하는 이 마케팅 전략에서 컨텐츠의 개발은 필수적입니다. 월트디즈니의 만화나 스타워즈 시리즈가 단순히 만화나 영화가 아닌 게임, 캐릭터 사업으로 발전하고, 아톰이나 토토로의 열쇠고리며 티셔츠가 거리에 넘쳐나는 것만 봐도 그 효과는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콘텐츠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지닌 잠재시장인 거죠.

<고양이의 보은> 역시 매력적인 컨텐츠를 지닌 일본 애니메이션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독특한 소재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 그리고 개성있고 사랑스러운 캐릭터. 물론 아쉽게도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심오하고 구체적인 주제의식은 확실히 떨어집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할만큼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일본은 고양이를 길조로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마네키네꼬' 라는 행운을 부르는 고양이 인형을 상점 앞에 세워두거나 수험생들에게 선물을 하기도 하죠. 우리에게 강아지가 친근한 것만큼이나 고양이는 일본인들에게 식구같은 동물입니다. <고양이의 보은>은 이렇게 주변의 가까운 소재를 활용합니다.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 세상에 둘도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거죠. 새로운 컨텐츠의 발견이란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이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서 우린 반가운 얼굴 하나를 만납니다.
영화 <귀를 기울이면>에서도 만난 적 있는 바론 남작이죠.
예의 멋진 정장 차림의 그의 집엔 맛있는 쉬폰 케이크가 있습니다. 쉬폰 케이크. 스폰지 케이크보다 훨씬 말랑말랑한 이 케이크는 부드러운 맛이 아주 좋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바론 남작은 특별한 손님을 위해 쉬폰 케이크와 자신만의 '바론 남작 브랜드 홍차'를 준비하죠.

폭신하고 부드러운 쉬폰케이크 한 조각과 바론 남작 브랜드 홍차 한 잔.
그리고 신나는 고양이 왕국으로의 여행.

오,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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