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파>, <킹덤>, <브레이킹 더 웨이브>, <백치들>, <어둠속의 댄서>.
감독의 필모그래피만 봐도 차기작 역시 화제작이 되리라는 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일곱번째 영화 <도그빌>은 개같은 마을 (Dog-ville)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영화 형식에 담아서 풀어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짧은 감탄사가 나옵니다.
연극과 적극적인 시도를 접목한 이 영화는 연극마저 표현할 수 없었던 한계들을 넘어섭니다. 존재하지 않는 문, 자란적 없는 덤불, 누구나 통과할 수 있는 벽. 감독은 이런 공간들에 대해 관객들로부터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영화 속 공간을 해체시켜 버립니다. 자크 데리다의 이론처럼 예술에서 해체란 전통을 단순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 속에서 전통이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이미 그는 영화의 형식을 파괴하며 이전의 영화들이 설명할 수 없었던 요소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그의 형식파괴는 95년 도그마 선언과 <백치들>을 통해 이미 시도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꽤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이건 형식상의 새로움이지 내용상의 새로움은 아닙니다. 추악한 인간의 이면,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본성,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새삼스러운가요? 뉴스에서 매일 보는 이런 얘기들이 뭐 그리 충격적이겠습니까. 대한민국은 도그빌Dogville이 아니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전 이런 문학적인 주제들을 영화라는 형식안에 담아낼 수 있는가, 과연 한 장르로서의 영화가 문학을 대체해 나갈 수 있는가를 고민했습니다. <도그빌>은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이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작품에서처럼 인간존재의 불안함에 대해 아주 문학적으로 접근하며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캐릭터들 역시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모든 캐릭터들은 선한 동시에 악하고, 다정한 동시에 냉혹합니다. 동전의 양면같은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지닌 사람들이죠. 그러나 주인공인 그레이스(니콜키드만)만은 다릅니다. 그녀는 마치 성모 마리아처럼 등장합니다. 남자들이 이상형으로 그리는 여성은 대부분 '창녀이면서 또한 어머니'인 여성이죠. 남자를 구속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사랑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녀를 학대하지만 그녀는 무한한 사랑을 베풀고 언제나 그를 용서합니다. 이런 여성 캐릭터는 감독의 전작인 브레이킹 더 웨이브나 어둠속의 댄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들은 언제나 희생과 구원의 양면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런 느낌은 트럭 속에 사과박스와 함께 탈출하는 그레이스의 모습에서도 지울 수 없습니다. 1800년대 영국의 화가 밀레이의 그림 '오필리아'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은 햄릿의 비극적 주인공이었던 오필리아의 그 푸르고 창백한 순교자적인 느낌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그레이스는 오필리아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허망하게 죽어가진 않습니다만.

도그빌은 주목할만한 영화입니다.
같은 내용물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꽤 어울리는 주제와 효과적인 그릇을 찾아냈습니다. 인간에 대한 성찰. 아무리 변주해도 지치지 않는 이 주제를 또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 낸 것이죠. 거기에 캐릭터들을 뽑아내는 솜씨까지 좋습니다.

하지만 완성도 높은 이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찜찜한 마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정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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