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반 주인공은 키리코의 그림 [거리의 우수와 신비]를 연상케 하는 거리를 홀로 걷는다. 그 거리에서 음료캔을 비닐 봉지에 담는 모습은 마치 <피아니스트>의 스필만 같기도 하다. 주인공이 사고 후 28일만에 깨어나 본 세상은 종말. 그것은 인간 폭력이 포화되어 만들어 낸 결과이다.

영국의 유능한 인기 감독, 대니 보일은 격분한(boil) 폭력적 인간을 담은 자료화면을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삽입,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대한 설득력과 '지금의 인간을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준비한다. 그 통찰력은 사스(SARS)의 공포를 연상케 하는 분노 바이러스의 전국 확산을 통해 섬뜩하게 피부에 전달된다. 결코 영화적 허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다가올 위기임을 체험케 하니 공포는 배가된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스꽝스런 좀비영화에 머무른다. 위협으로부터 대응하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만 있지 폭력적 인간과 디스토피아에 대한 진지한 관찰은 적어진다. 영화가 이 대신에 택한 것은 좀비 소탕 오락게임이나 광남(狂男)의 우중광기(雨中狂氣)쇼 같은 가벼운 놀이다.(맨체스터에서 벌이는 남자 주인공의 광분 살해극을 보고 있을 때, <지옥의 묵시록>의 엔딩 한 장면이 떠올랐는데 왠지 둘을 비교해보면, 쟨 왜 저러나 싶다.)

아무래도 이와같은 우스운 행동들은 상업적 이해관계에서 타협점을 찾은 것 때문에 나온 것이겠지만 그래도 암울한 미래사회에 대한 성찰적 시선이 진득했던 <매드맥스 2>나 바이러스에 의한 인간성 파괴를 좀비를 통해 재미나게 연출해 낸 <데드 얼라이브>(피터 잭슨)가 될수도 있었던 영화가 작가 고집 부족으로 인해 단순 오락영화에 머무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28일후...>에는 헐리우드 오락영화의 공식 엔딩 표시로 보이는 '자국기 펄럭이며'가 있지 않아서 좋았다. [★★★]

※덧붙이기
의문점: 바이러스는 상처, 입 안, 눈 속으로 튀어도 전염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입술가에 좀비의 피가 어떻게라도 좀 튀었을 거 같은데 흑인여자랑 키스할 때 옮겨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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