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 잉글리쉬]의 원작은 로완 앳킨슨이 몇 년 전에 출연했던 크레디트 카드 광고 시리즈입니다. 멍청한 스파이와 부하 보프의 설정은 그 광고에서 거의 다 완성되었던 모양입니다. 예고편에도 나오는 볼펜총 장면은 광고에도 있었다나봐요. 광고에서는 비서를 쏘는 대신 자기 다리를 쏘았던 모양이지만요.

영화는 [007] 시리즈를 직접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는 대신 설정만 빌려와 로완 앳킨슨식 코미디의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 쟈니 잉글리쉬는 제임스 본드의 패러디가 아니라 제임스 본드를 흉내내고 싶은 멍청한 남자입니다. 사소한 차이같아 보이지만 완성된 결과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오스틴 파워즈]처럼 직접적으로 [007] 패러디를 목표로 삼은 영화들보다 원작에 덜 공격적입니다. 그만큼이나 원작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기도 하고요.

영화는 유능한 007 타입 스파이들이 폭탄 테러로 모조리 몰살당하면서 시작합니다. 그 결과 영국 정보 기관 'MI7'의 책상붙이 직원인 쟈니 잉글리쉬와 그의 부하 보프가 얼떨결에 현장 첩보원이 되고 곧 그들은 영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프랑스 기업가 파스칼 소바쥬를 상대하게 됩니다.

쟈니 잉글리쉬는 전형적인 로완 앳킨슨식 캐릭터입니다. 실수투성이이고 이기적이며 야비하기까지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구석이 있는 작은 남자지요. 쟈니 잉글리쉬의 모험담은 대부분 어처구니없고 종종 심하게 지저분한 슬랩스틱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정말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도 그런 슬랩스틱이지요.

성공적인 슬랩스틱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그의 [미스터 빈] 영화였던 [빈]을 연상하면 될 거예요. [쟈니 잉글리쉬]도 장편 영화보다 짧은 콩트들을 엮은 텔레비전 시리즈에 더 잘 맞는 작품이었어요. 종종 스토리를 끌고 가기 위해 삽입되는 '진짜 줄거리'나 '액션'이 나올 때마다 속도와 재미가 심각하게 떨어졌으니까 말입니다.

슬랩스틱이 아닌 농담들 중 주목할만한 건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것들입니다.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해요. 영화는 낡아빠진 영국 국가 체제에 대한 농담을 잔뜩 품고 있지만 그 자조는 상당한 수준의 자부심 역시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십여 세기 동안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던 프랑스에 대한 야유가 가득 차 있지만 그 야유는 어떻게 보면 영국인들이 품고 있는 프랑스상에 대한 농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배우들은? 우선 로완 앳킨슨은 언제나처럼 로완 앳킨슨입니다. 평할 필요도 없지요. 존 말코비치는 그 동안 프랑스에서 열심히 익혔던 프랑스 악센트를 이 영화에서 선보입니다. 그가 연기한 거창한 프랑스인 악당 파스칼 소바쥬는 앳킨슨의 쟈니 잉글리쉬보다 더 본드 영화 패러디에 가깝습니다. 나탈리 임브루글리아는 거의 연기다운 연기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예쁘군요.

기타등등

무도회 장면에서 본드 사중주단이 음악을 연주합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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