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싸이코드라마

1.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믿는다

<4인용 식탁>은 두가지 면에서 주목받는 영화다. 전지현의 연기변신과 새로운 스타일의 공포영화라는 점이 그것이다.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해 간략하게 평가를 내리자면 우선 전지현의 연기는 만족스럽다. <4인용 식탁>을 기점으로 전지현 연기의 전후가 나뉠 것이다.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전지현과 <4인용 식탁>을 보고난 후 알게 되는 전지현은 다른 사람이다. 꽃무늬 치마를 입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아줌마에서 소름끼치는 신들린 표정연기까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녀의 가장 취약점인 발음은 영화의 느린 호흡으로 메꾸어진다.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연기변신은 성공이다.

그러나, 한편의 공포영화로서 <4인용 식탁>은 찬반이 엇갈린다. <식스 센스> 같은 묵직한 사실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군데군데 허술하다. 영화 초반 꽉짜인 드라마가 전개되다가 중반쯤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스토리에 빈약한 점이 눈에 띈다. 다행히도 마지막 장면은 단점이 가려질 만큼 훌륭하다. 분명한 것은 이 영화는 다른 공포영화들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 공포영화의 경향이 억울하게 죽은 원혼에 의한 연쇄살인이라면, 이 영화는 오히려 원혼 그 자체에 더 집중한다. 그래서 왜 그런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는지를 하나씩 설명해준다. 물론 그 원인은 무척 비극적이다. 잘만든 일본 공포영화 <큐어>처럼 가슴 속으로부터 서서히 잠입해오는 공포가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우울한 이유가 여기 있다.

<4인용 식탁>은 우울한 영화다. 마치 <지구를 지켜라!>에서 신하균의 과거가 너무 암울해서 영화를 보고나서도 감당할 수 없는 큰 짐을 진 것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4인용 식탁>에서도 박신양과 전지현의 비밀은 관객을 숙연하게 만든다. 때로는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는데 그래서인지 영화는 관객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믿으라고. 만약 당신의 기분이 지금 우울한 상태라면 이 영화를 보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극장을 나서며 갑자기 뛰어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뼛속깊이 느껴지는 서늘함을 감당할 자신 있는 사람만 영화를 보라.


2. 당신 눈에도 그게 보였어요?

"물 좀 한잔 떠다주실 수 있나요?" 전지현의 요청에 박신양은 흠칫 놀란다. 부엌으로 가려면 식탁을 지나가야 하고 식탁에는 죽은 아이들이 앉아있는 것이다.

<4인용 식탁>은 공포영화라기보다 심리 드라마다. 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밤늦게 집에 불켜고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너무나 잘 알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살릴 수도 있었던 아이들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게된 바로 그날이라면 죄책감 때문에 아마 자신의 발자국 소리에도 흠칫 놀랄 것이다. 새벽 4시까지 책상에 앉아 일을 하던 그는 갑자기 목이 쭈뼛해지고 소름이 돋는다. 무언가 뒤에 있는 것 같은 기시감이 전율처럼 느껴진다. 살짝 뒤를 돌아본다. 그곳에 아이들의 시체가 놓여 있다.

아이들의 시체는 이후에도 그를 계속 괴롭힌다. 하지만,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더이상 시체들의 깜짝쇼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시체를 보게된 남자의 고통 그자체다. 그리고 영화는 그 능력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를 드러낸다.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한 여자가 바로 비밀을 푸는 열쇠다. 전지현, 박신양, 김여진 - 그들은 모두 태생적으로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이들을 괄시한 한국역사와 그 역사에서 희생된 개인의 비극이 살짝 끼어든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의 괴로움. 그리고 그것을 풀어줄 유일한 열쇠인 이웃집 여자. 박신양은 자신의 고통을 도와줄 유일한 사람인 전지현에게 매달린다. 그녀는 그에게 타자이면서 또한 내면의 또다른 자아(얼터에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통을 해결해줄 사람이 결국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두 사람의 관계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연기하는 싸이코드라마처럼 건조하고 내밀하다.

'4인용 식탁'이라는 제목은 가족의 해체를 상징한다. 조명이 테이블이 아닌 의자에 떨어지는 이 모던한 가구는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에 현대사회의 인물들은 파편화되어 있다. 엄마가 자식을 독극물로 살해하고, 혼자사는 외로운 여자가 고양이를 버리고 자살하는 세상. 단란하게 보이는 박신양의 가정 역시 숨겨진 비밀을 갖고 있다. 왜 박신양의 눈에는 목사인 아버지가 매번 귀신처럼 보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융합하지 못하는 인간군상은 결국 유령으로 또는 정신착란으로 식탁에 마주 앉게 된다. 숨막히게 답답한 고층 아파트로 가로막힌 어느 한 작은 공간은 4인용 식탁의 확장이다. 깨지기 쉬운 4인용 식탁은 우리 주위의 아파트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3. 우산을 가져온 유일한 아이

(이후의 글을 읽음으로써 영화의 중요한 줄거리를 미리 알 수 있습니다)

<4인용 식탁>은 오랜동안 준비되어온 영화다. 만들어지지 못할 위기를 수차례 겪었고, 신인감독 이수연(A)이 직접 쓴 시나리오는 무섭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우울한 심리스릴러 단편을 몇 편 만들어온 그녀는 <4인용 식탁>에서 두 스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영화가 수차례 엎어졌다가 회생한 탓일까? 스토리에 아귀가 맞지 않는 미흡함이 남아 있다. 열린 내러티브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그 폭이 너무 넓다. 여기 그 몇 가지 미스테리를 기록해본다.

- 지하철의 두 아이는 누구인가?

독극물로 아이들을 죽인 것은 아이의 엄마라고 라디오 뉴스는 밝힌다. 그래서 아이들이 마치 전지현이나 김여진의 아이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종의 맥거핀이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은 주인공과 크게 상관 없었다.

- 전지현의 아이는 누가 죽였는가?

김여진이 베란다에서 아이를 들고 있다. 전지현이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말한다. "언니 그러지마. 아이 내려놔" 김여진은 정말로 아이를 내려놓는다. 그런데 아파트 경비원이 증인으로 선 법정 장면에서는 그의 진술과 정반대로 오히려 전지현이 아이를 떨어뜨리는 화면이 나온다. 도대체 누가 죽였나? 전지현의 남편은 경비원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진술을 해줄테니 작은 상점이라도 하나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남편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면 경비원은 남편이 원하는 진술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는 전지현이 죽인 것인가? 혹시 전지현과 김여진이 같은 사람은 아닐까? 또, 전지현과 김여진은 동갑내기 아이 덕분에 친해진 사이다. 사건당시 아이는 둘이었다. 한 아이는 죽었다. 그렇다면 다른 한 아이는 어디갔는가?

- 전지현은 귀신인가?

무당의 딸인 그녀는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불행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슴 아픈 인물이다. 그런데 과연 그녀는 현실 속의 인간인가? 혹시 박신양의 정신이상이 만들어낸 환상은 아닌가? 김여진이 법원에서 추락시도할 때 찍힌 신문 1면 사진에 전지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그 시간에 남편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에는 남편 혼자 서 있을 뿐이다. 이전 스토리에서 박신양의 동생이나 경비원이 전지현을 보았다는 점에서 그녀를 귀신으로 보기 힘든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박신양에게 "맛있어요?"라고 묻는 전지현을 떠올려보면 그녀가 어느 세계에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다.

- 마지막 장면은 시간상으로 언제인가?

박신양은 4인용 식탁을 부숴버린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그 식탁은 부서지지 않았다. 그 식탁에 두 남녀와 죽은 아이들이 앉아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순서상으로 이 장면은 어디에 놓이는가? 만약 영화 중반쯤에 해당한다면 전지현이 처음부터 귀신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전지현이 자살한 다음이라면 그제서야 전지현이 비로소 귀신으로 등장한 것이다. 물론 후자가 더 믿기 쉬운 설명일텐데, 그렇다면 식탁은 어떻게 된걸까? 박신양이 스스로 다 부숴놓은 다음에 다시 똑같은걸로 사왔다는 말인가? 아니면 감독이 찍어놓은 뒤 스스로 만족한 나머지 그냥 마지막에 갖다 붙인 것인가? 사실 영화의 마지막으로 사용하기에 멋지게 어울리는 이 장면에는 그럴 듯한 줌 아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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