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용 식탁]은 갑자기 죽은 사람들을 보게 된 남자와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읽을 수 있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막 결혼을 앞둔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정원이고 여자는 남편과 별거 중인 기면증 환자 연입니다. 정원은 연이 다니는 병원의 내부 개조를 맡다가 연을 알게 되고 서서히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지요.

[4인용 식탁]은 기본적으로 서술방식을 이용한 미스터리입니다. 우리는 작업장에서 발생한 가벼운 사고 이후 지하철에서 죽은 아이들의 유령들을 보게 된 정원의 이야기와 내용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건에 말려든 연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게 됩니다. 정원은 연을 만난 이후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진상에 접근하게 되고, 그 동안 영화는 연이 증인으로 참석한 재판 과정을 보여주며 연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씩 관객들에게 설명해줍니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영화는 유령들이나 유령을 보는 사람들과 같은 장르 관습과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장화, 홍련]처럼 관객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쓸데없는 사운드와 이미지를 남발하지도 않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꼭 할 것만 하는 영화지요. 하지만 덕택에 사람들이 이 장르에 속한 영화들에 기대하는 자극이 상당히 떨어지기도 합니다. 2시간을 넘기는 러닝타임 동안 느긋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속도도 장르 관객들이 선호할만한 요소는 아니고요. 마케팅 부서에서는 애를 먹겠지만 꼭 문제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초자연적 소재의 영화들이 공식적인 장르 공포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영화는 자극의 나열보다 조금 더 입체적인 드라마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는 꽤 전통적이기까지해요. 한마디로 원하지 않은 소명을 짊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요. 쿨한 모노톤 화면으로 그럴싸한 직종에 종사하는 도회지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와 주제는 무속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수많은 소설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그렇게 중요시 다루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이 영화에서는 서구 종교라는 것보다 안정된 믿음의 대상을 제공해주는 주류 종교의 위치가 더 중요하지만 말입니다.

영화의 각본은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종종 같은 요소들이 장면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 이 영화의 대사들은 남자 주인공 정원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구어체의 자연스러움을 잘 살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 연으로 넘어가면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텔레비전 멜로드라마의 각본처럼 전형화되고 굳어져버려요.

이 영화 각본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그 모호함입니다. [4인용 식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상당 부분은 그냥 꿈처럼 모호합니다. 설명은 종종 무시되고 주어진다고 해도 불명확하기 일쑤지요. 이건 분명 의도적이고 어느 정도 장점으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남자 주인공 정원이 겪는 정서적 불안함을 묘사하는 데 이 모호함은 필수적이죠. 그리고 원래 이 장르에서 완벽한 설명은 맛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이 모호함이 효율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4인용 식탁]의 모호함은 종종 그냥 모호하기만 할 뿐 드라마와 정서적 감흥의 근원이어야 할 중의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가 의도했던 것만큼 관객들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면 그건 영화의 모호함이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종종 영화는 조성음악을 흉내내는 척하는 무조음악처럼 느껴집니다. 주인공들이 견뎌내야하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정서적 힘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닙니다.

러닝 타임 대부분을 할애하는 미스터리 역시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합니다. 해답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한 콘트라스트가 서지 않기 때문이죠. 정원의 것은 미스터리가 성립되기엔 너무 손쉽고 연의 것은 드라마를 구성하기엔 너무 흐릿하거든요.

하지만 [4인용 식탁]은 여전히 볼만한 영화입니다. 일단 보기가 참 좋은 영화예요. 이수연(A)은 분명한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특별한 과시나 무리한 노력 없이 그런 자신의 스타일을 영화 속에 녹여내고 있습니다. 가끔 이런 세련됨이 그냥 기교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종종 아주 흥미로운 영화적 경험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의도만큼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에는 아직 상당한 량의 비극적 정서가 남아 있습니다. 관객들이 장르에 대한 습관적 기대를 접고 간다면 이 정서는 보다 잘 먹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안테나의 감도를 어느 정도 높여야 하겠지만요.

배우들에 대해 말하라고 한다면, 박신양 그룹과 전지현 그룹 중 박신양 그룹 쪽이 더 낫다고 해야겠군요. 이렇게 배우들을 그룹으로 나누는 이유는 정말 정원쪽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연기가 연쪽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연기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연기보다는 대사나 캐릭터 설정 때문일 수도 있겠죠. 전지현의 경우 낮은 톤의 대사 처리에 억지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건 배우의 경험 부족 때문일 수도 있고 용병술의 문제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4인용 식탁]은 현대 미술관의 기념품 코너에서 산 모던한 물건같은 영화입니다. 보기 근사하고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도 대충 알 것 같지만 정작 확신은 안서고 억지로 쓴다고 해도 아주 편하지는 않은 물건 말이에요. 전 감독/작가가 야심을 살짝 접고 보다 친절한 영화를 만들었다면 결과가 더 효과적이었을텐데...라고 생각한답니다. 아직 영화는 그 모호함 속에서 충분한 통제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이니 말이에요.

기타등등

브로셔를 읽어보니 이 영화에 나오는 소파들을 박신양이 직접 디자인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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