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의 죽음자체가 스포일러겠군요)

영화보다 배우가 더 거대한 경우는 종종 보아왔던 현상입니다. <이도공간>의 경우는 배우 덕분에 영화가 실제 이상으로 커 보이는군요. ㅡㅡ

"귀신은 단지 이미지에 불과하다. 당신이 믿을 때만 당신의 머리 속에서 존재한다."
정신과 의사인 짐(장국영)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정신병의 일종으로 여기고 뇌를 치료하면 치유된다고 생각하죠. 이런 짐에 의하면 얀(임가흔)은 뇌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환자입니다. 자주 귀신을 보는 그녀는 결국 치료가 되긴 합니다. 문제가 뭐냐구요? 이젠 짐이 귀신을 보기 시작하거든요. ㅡㅡ

1. 눈치없이 튀어나오기

<이도공간>이 부리는 잔재주에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끼어 드는 쇼크 사운드, 무례하게 튀어나오는 손이나 머리, 귀신을 위해 준비되었을 게 뻔한 화면의 빈 여백 등등. 물론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동반한 세련된 공포를 시도하긴 합니다. 대부분 불발했다는 문제라면 문제죠.

영화를 만든 나지량 감독은 <성원><성월동화> 각본을 썼던 이력처럼 멜로에 강점이 있습니다. <이도공간>은 얀과 짐의 과거가 모두 멜로 정서 안에 담겨 있으며 영화의 매듭을 푸는 방법 역시 멜로의 그것이 열쇠로 기능합니다. 공포 영화에 멜로향이 풍기는 게 문제가 될 순 없죠. 오히려 자칫 경직될 수 있는 공포의 감정을 이완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도공간>의 멜로는 영화를 삐걱거리게 만듭니다. 종종 타이밍을 놓치고 등장하는 눈치없는 멜로는 관객의 실소를 동원하고 말아요. 공포 영화에서 의도되지 않은 폭소가 이 장르에 얼마나 쥐약인지 아시죠?

2. 무임승차 공포

귀신이 나타났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무작정 도망치기? 최선은 아니지만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죠. <이도공간>이 관객에게 제공하는 공포의 해결책은 무조건 현장에서 도망가라고 말합니다. 공포 밑천들을 많이 확보해두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주는 건 아니에요. 쟁여 놓은 공포 효과들을 관객에게 던져서 적중하지 못하고 그냥 내달릴 뿐입니다. 결국 지치셔 포기하는 건 관객일 수 밖에 없죠.

하지만, 영화와 상관없이 <이도공간>의 마지막 장면은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벼랑에 몰린 짐이 결국 뛰어내리길 결정하는 상황은 연기자 장국영과 현실의 장국영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영화와 상관없는 슬픔이 밀려오기에 충분하죠. 영화 속에선 그를 잡아 줄 사람이 있었지만 현실에선 그렇지 못했죠. ㅡㅡ

심심한 공포 영화로 유명을 달리할뻔한 <이도공간>은 장국영 덕분에 무임승차식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군요.


TIP

●● 이 영화를 본 날이 장국영의 49제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ㅡㅡ 고인의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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