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는 어떤 편견이 있나요? 말해주세요. 우선 내가 먼저 아웃팅 하죠. 나라야 가방 든 여자를 싫어하고, 핸드폰에 무엇인가 달려있으면 친해질 수 없는 사람이라 단정짓죠. 나 또한 가득 그득 넘쳐나는 편견의 틀 속에 살고 있기에 더럭 분개하는 행동을 취하기가 매우 조심스럽군요. 그러나, 그 편견(부정적 의미를 지녔음은 인정하시지요?)이 누군가를 제압하고, 비판하며, 차별하는 잣대로 이용된다면 그건 '아니오‘ 라고 말하고 싶네요. “너 참 행복하겠다 라든가 불행하지 않니?“라는 말도 사양할래요. 그것이야 말로 폭력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악성종양이 아닌가요? 스스로 만들어낸 정신의 캔서라면 모를까. 누군가 들이댄 호스에서 흘러든 암세포는 정말이지 억울한 일이죠.

<파 프롬 헤븐>은 토드 헤인즈에게 ‘네가 널 오해했나봐’라고 회의하게 만든 영화입니다만, 편견의 폭력성과 오만함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보입니다. 문제는 영화 내에서의 편견이 문제가 아니라, 감독의 시선 (관객을 배려하는 그 넓은 아량심)에도 편견이 내재되어 있었던지라 영 뒤가 찜찜하고 개운치 않았던 것이지만요. <파 프롬 헤븐>은 우선 우아한(실은 아름다운) 아내, 자상한(실은 성공한) 남편이라는 구도를 세워놓고 이것이 ’행복이 가득한 집‘의 전형이라는 편견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전형화도 이토록 지독한 전형화를 근래에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 영화에서 제시한 가정의 구도가 반드시 행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영화 속에서 그렇다고 하니, 뭐 어쩌겠습니까. 저런 게 행복이라는 거겠지, 그리 생각해야겠지요. 영화의 컨셉이 그런 거니까요. 완벽한 행복 뒤에 감춰진 완벽한 파탄! 흑인과 사랑에 빠지고, 동성애자인 것이 또 불행한 일이라고 하니까. 또 그런가보다, 할 수 밖에. 그래요. 그 시대가 그런 시대인지라. 그건 좀 감안토록 하지요.

물질적 풍요로움 없이도 알콩 달콩 살아가는 이 시대 소박한 가정을 향한 이 무시무시한 편견은 인종차별로 이어집니다. 흑인과 이야기만 나눠도 궁시렁 궁시렁 뒷담화가 끊이질 않고, 디건의 아이는 돌팔매질을 당하니까요. 문제는 정원사로 등장한 디건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데 있어 학위에 대한 언급이 왜 '슬쩍‘ 삽입됐어야 했는지 다소 당황스럽더군요. 현대미술에 대한 디건의 혜안은 그나마 자연스러웠지만, ’사랑받아야 할 근거‘를 은연중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나친 비약일까요? 나는 디건이 못 배우고, 미로나 피카소를 몰라도 캐시와의 사랑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한 인간의 영혼을 표현하는 데 있어 지적소양을 간과하지 않은 감독의 배려에 위대한 편견이 숨어 있었음을 나는 또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사랑을 정신적 교류에서 그치고 만 것도 위대한 편견의 반열에 오를 만하지요. 그런 게 고상하다는 거겠지요? 아니면 말고요.

그렇다면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또 어떠할까요? 동성애든 이성애든 사랑이라는 것이 ‘한 인격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감정의 합일’이라는 통념에서 보자면 프랭크의 사랑은 상당히 육체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또 시대, 그래요. 시대가 그래요. 자신의 성적성향을 인정하는데 엄청난 고통을 동반해야 하고 ‘질병’이라는 규정으로 매도당하는 사회 속에서 그것을 비극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성애처럼 자연스런 경로로 다다를 수 없다는 것도요. 그러나, 프랭크의 사랑은 동성애자를 오해하게 만드는 데 주요한 단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적취향’에만 포커스를 맞췄다는 거죠. 프랭크가 다행히도 “그게 사랑일 줄 몰랐다“라고 고백하는 대목은 저를 다소 안심시켰죠. 그래도, 여전히 찜찜했단 말입니다. 모든 것이 가짜였음을 비로소 인정하자 차갑게 등을 돌리는 프랭크의 냉정함은 삶의 허위, 가식을 보여주기에 너무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성애자이기 전에 한 사람과 오래토록 시간을 함께 하나의 ‘인격’이었죠. 그것 또한 지나치게 간과한 것 같더군요. 이는 마치 인간의 삶이 성에 종속되어 있는 것 아닌가 싶었죠. 이는 분명 일부에게는 동성애자를 오해하게금 만드는 또 하나의 편견을 창조한거죠.

다소 매운 회초리를 들고 <파 프롬 헤븐>을 두들겼(팼)습니다만, 저는 분명 토드 헤인즈가 편견으로 넘쳐나는 시대를 배경으로 정의나 진리 등에 눈 뜨고 있는 캐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오랜 정설을 혹독하게 일깨워주고 싶었을 거라는 것도요. 그래요, 그것에 동감했고, 울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심신이 안정되자 영화 외부 감독의 시선이 자꾸 걸리더군요. 이에 적잖은 분개를 했던 것 같습니다. 과연 누가 행복한 것인가? 행불행을 결정짓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데 어떤 이유들이 필요한가? 인도 바라나시에선가 시쳇말로 미친년을 보았는데 나의 일행은 ‘야, 참 안 됐다!’라고 내뱉었지요. 그랬더니 누군가 한 명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 저 여자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니들이 어찌 아느냐?” 그래요. 아무도 알 수가 없죠. 지금도 영화 포스터 속 캐시의 행복한 웃음이 떠오르는군요. 캐시의 행복은 편견이 창조해낸 그물 속에 갇힌 허상이었죠.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데 조차도 수많은 편견들이 동반될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일깨워 준 편견을 말하는 편견의 영화였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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