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좋아하세요? 전 옥수수를 보면 '아, 이제 여름이 왔구나'하고 느낀답니다. 뭐 요즘에야 겨울에도 가끔 볼 수 있지만 옥수수는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 오후, 시원한 바람이 부는 시골집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따먹는 게 제맛이죠. 먹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라, 하나씩 따 먹는 사람, 하모니카처럼 뜯어먹는 사람, 가로로 따먹는 사람, 세로로 따먹는 사람, 여러가집니다. 그런데 이 맛있는 옥수수는 왜 주식이 안 됐을까요? 감자를 주식으로 사용하는 곳도 많은데 말이죠. 그 대답은 조금 후에 알려드리죠.

<파 프롬 헤븐>은 시간의 바늘을 1950년대 미국으로 돌립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공포는 사람들을 현실의 세계와 자연적인 사물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전세계는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의 양대 축으로 나뉘면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권에서 경제, 문화를 비롯한 모든 면에 있어 선두권을 쥐게 되었죠. 덕분에 당시 미국은 쓰고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소비주의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영화의 출발점은 이렇게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운 미국의 1950년대, 한 상류층 가정입니다.

너무나 모범적이고 완벽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러나 이 가정에 금이 가는 일이 생깁니다. 이들 각자에게 새로운 사랑이 생긴 것이죠. 그러나 그 사랑이라는 것이 단순히 불륜에 해당하는 애정행각은 아닙니다.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는 커다란 두 세계에 관한 것이죠.

우선 남편의 사랑으로 상징되는 동성애의 세계가 있습니다. 사회에서, 가족에게서 버림받지 않기 위해 남편은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숨깁니다. 그는 ‘노력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커밍아웃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나섭니다.

아내의 사랑으로 상징되는 세계는 인종갈등의 세계입니다. 흑인 정원사를 마음에 품게 됐지만 그녀 역시 주위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결국 정원사의 딸마저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그녀는 절망에 빠집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두 세계를 상징적으로 다룬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 세계는 자유를 얻지만 한 세계는 절반의 성공에 그칩니다. 남편은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나지만, 아내는 어정쩡하게 멈춰서게 된 것이죠. 특히 그녀가 내린 결정들이 자의적인 것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남편의 결정이 그녀에게 동기를 부여했고, 정원사의 판단이 그녀를 홀로 서게 한 것이죠. 그들의 결정이 없었다면 그녀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택했을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딸들은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캐시(줄리안 무어)의 딸은 거울을 통해 엄마를 보면서 ‘엄마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아마도 감독이 생각하기엔 줄리안 무어 정도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배울만한 여성상이라는 생각에서 였을 겁니다. 아니라면 아직까지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거나요.

자, 아까의 대답을 알려드리죠. 옥수수가 주식이 되지 못한 까닭은 단 하나, 부족한 영양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비타민 B복합체인 ‘나이아신’이라는 것이죠. 아주 적은 양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 영양소가 없다면 ‘펠라그라’라는 무서운 병에 걸릴 수 있거든요. 실제로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남아메리카 사람과 강원도 산간벽지 사람들에게선 이 병이 발견되곤 합니다. 그래서 이 곡식은 주식이 될 수 없었던 거죠.

<파 프롬 헤븐>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전적이고 아름다운 이 시대극은 세트, 의상, 조명, 카메라 워크, 프레임 배치까지 50년대 멜로드라마를 제대로 담아냈습니다. 평론가들은 더글라스 서크의 영향권 아래 진정한 고전 멜로를 복원 시켰다고 합니다.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한지라 이 부분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아하고 매력적인 그 세계엔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무리 고전물이라해도 현대에 옮겨진다면 색다른 관점 하나쯤은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 아쉬움은 ‘멜로’의 속성이기도 하겠죠. 그 부족함만 채워준다면 주식으로 먹기에 아쉬움이 없을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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