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뻔뻔한 용기

연변에서 고구려 유분이 발굴됩니다. 남과 북은 각각 발굴단을 참여시키는데, ‘하필’ 발굴단 대표학생은 철수(조인성)와 영희(김사랑). 왜 ‘하필’이란 말을 써야 했을까요?

이제부터 쭉 나열해드리죠. 우선 ‘남남북녀’를 충족시키기 위한 이들의 국가 대표급 미모. 여기에 바른생활 교과서가 지정한 영원한 친구 ‘철수와 영희’처럼 이들의 설정은 ‘교과서적인 진부’ 그 자체. 철수는 못 말리는 플레이보이, 영희는 똑 소리 나는 모범생. 철수 아버지는 국가정보원 국장, 영희 아버지는 국가인민무력부장. 남북영화 사상 최초의 부부가 될지도 모르는 커플을 이렇게 무시무시한 진부와 통속으로 밀어 넣다니. <남남북녀>의 용기가 가상하군요.

조혜련, 황보(A)의 깜짝 출연으로 문을 여는 <남남북녀>는 앞으로 영화에 담길 웃음들이 즉흥적이고, 단발적일 뿐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진 말라고 살짝 경고합니다. 경고 이후, 영화는 ‘연예인 배우’들의 과장 연기와 북한말을 활용한 농담 따먹기로 연명합니다.

조인성의 과장된 연기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신체를 가학하면 할수록 관객들이 즐거워 할 거라고 믿고 일단 망가지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연기변신’과는 별개의 문제죠. <클래식>에서 보여준 ‘시트콤 연기’가 <마들렌>을 거쳐 여기까지 와서도 지속되는 걸 보면, 연기의 양과 질은 상관없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줍니다. 무대가 연습실인 립싱크 가수처럼 언제까지고 깨지면서 연기를 터득할 수는 없는 일이죠. 일단 무대 밖에서의 견고한 트레이닝을 권고 아니 강요하고 싶어집니다.

2. 코믹영화의 진수?

전반전 내내 계산 실패로 헛발질만 한 <남남북녀>는 후반전에서 옷을 바꿔 입는 전략을 취합니다. 코믹을 버리고 멜로를 취하기 시작하죠. 그러자 영화는 이제까지 건들거리던 분위기를 장엄한 음악으로 때우고 남북의 이념 문제를 끌어들입니다. 강남 도련님과 강북 아가씨의 연애질처럼 사소하게 다루던 이들의 국적을 삽시간에 ‘6.25 특집극’으로 과장하고 있죠. 영화의 이런 쇼맨쉽 덕분에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이때부터죠. 연기한 배우나, 연출한 감독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폭소 때문에 영화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할 판입니다.

남북문제를 끌어들이지 말았어야 해요. 국경의 장벽은 이들의 사랑에서 얄팍한 도구, 그 이상을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촐한 캠퍼스 연애담이었다고 해서 <남남북녀>에게 돌아갈 비난이 사라지는 건 물론 아닙니다. 시트콤의 1회분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을 사소하고 통속적인 이야기가 근본적인 문제죠. 하지만 최소한 후반부의 김정일과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헤프닝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마치 국제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의 집단 난투극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걸 국제적인 망신이라고 하죠. ㅡㅡ

<남남북녀>는 촬영시작에서 개봉까지 100일을 조금 넘긴 영화입니다. 제작공정의 단축은 감독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게 합니다. 하지만 <남남북녀>는 다른 경우로 돌려야 할 것 같네요. 신중을 기하지 못한 성급함을 선처해달라는 일종의 호소장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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