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수호는 미국이나 일본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우리도 이를 근심하니 어색하다가도 반갑다. 이제 우리에게도 <지구를 지켜라!>가 생겼으니 독수리 오형제나 미국의 같잖은 과대망상 히어로 녀석들, 절대 안 부럽다.

장준환 이 감독, 헛소리(자신이 존 레넌의 환생이라고 믿는 한 청년의 망상기를 다룬 그의 단편 <2001 이매진>을 본적이 있다) 해대다 영화인생 끝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지구 수호대 한국 대표로 컴백할 줄이야! <지구를 지켜라!>라는 침붙여넘겨먹기 동그란딱지스러운 제목을 첨 봤을 때, 저 따위 영화를 누가 보겠냐, 차승재(제작자) 완전 미쳤구나, 난 저 영화 웬만하면 안 본다, 불쌍하다, 뭐 이런 생각을 10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씹었드랬었었는데…, 뭐든 섣불리,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진정으로 유쾌했고 진정으로 울린 <지구를 지켜라!>를 이리하야 일단 2003 올해의 한국영화로 꼽는다. 또 다른 똘마니(?!) 감독인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 있긴 하지만 잘만 하면 올 최고의 영화 자리는 지킬! 수 있으리라.

<지구를 지켜라!>가 이토록 칭찬을 바가지로 먹는 이유는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의 기발한 상상력이 낳은 창작 역작이기 때문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상상력이란 무엇이며, 인용이란 무엇이며, 재미란 무엇이며, 메시지란 무엇이며, 감동이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영화의 상상력은 물파스에서 우주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코믹, 멜로, SF, 스릴러, 미스터리, 스플래터, 키치, 포스트모던, 맨인블랙, 미져리,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길, 새, 터미네이터, 복수는 나의 것, 엑스파일의 살점을 먹성 좋게 뜯어먹어 소화시키고 있으며, 반전쟁, 반폭력, 반자본주의에 대한 시위를 하고 있으며, 웃음과 슬픔의 경계를 교묘하게 드나들고 있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못한(혹은 않은) 재료로 이와 같은 맛있는 잡탕찌개, 혹은 합주를 혼자서라도 지구를 지키겠다는 병구의 마음가짐으로 내놓은 감독의 이 역작에 그저 "좋았다"는 칭찬만 보낸다면, 그것은 평론을 하는 이의 자세가 아니다. 아직도 이 걸작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문화적 외계인을 위해, 나도평론가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말하고, 써야한다. [★★★★]

※ 못다한 말
1. 순이가 떠나는 뮤직비디오 장면이 참 좋다. 나는 이제껏 이처럼 싸구려 같으면서도 분위기 있는, 웃기면서도 애상적인 이별 씬을 본적이 없다.

2. 백윤식 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처럼 훌륭하신 중년 연기자들이 많은데, 왜 그간 한국영화는 젊은 스타들 캐스팅 못해 울고불고 난리쳤는지 모르겠다.

3.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패러디한 유인원은 신하균이 직접 연기했다고 한다. 와우, 대단하다. 관객이 알아보지도 못할 것을….

4. 장준환 감독은 DVD를 통해 감독판을 내놓을 것을 예고했다. 삭제된 잔혹 장면도 살아날 것이라는데 정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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