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땐 유망한 골프 신동, 지금은 증권사 말단 직원 강승원(김승우). 이 친구, 인생역전을 간절하게 빌고 있습니다. 역전이고 뭐고 당장 막 내릴지 모르는 꼬질꼬질한 인생이 문제죠. 조폭 돈으로 장난 좀 쳤다 몽땅 날려 먹었거든요. 사면초가 직전에서 승원은 이상한 나라에 들어섭니다. 그곳의 승원은 포기했던 골프를 치고 있는데다 연예인 못지 않은 유명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아내가 '하지원'이구요. ^^ 엉뚱한 세상으로 빠져 버리는 영화적 관습은 자주 보셨으니 이해 되실 테고, 남은 건 관습을 얼마나 잘 요리하느냐 겠죠.

엘리스보단 이상한 나라

결국 '인생 역전' 했군요. 매끈한 스포츠카, 아름다운 아내, 사회적인 명성까지. 미리 셋팅되어 승완을 기다리는 옵션들을 마다할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이상한 나라에서 승완은 골프 챔피언이라는 것. 하지만 이 마저도 가뿐하게 뛰어넘습니다. 몇 번 연습으로 다시 골프천재가 되버리는 걸요. ㅡㅡ

<역전에 산다>가 관심있는 건 '이상한 나라'이지 엘리스가 아닙니다. 빵점짜리 남편이 어느 날 자상한 남자로 변해버리고, 칼을 들던 조폭 두목이 수술용 칼을 든 의사가 되버렸습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 상사는 대머리 택시 운전수가 되어있고 세상은 한국의 4강 진출을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믿는 곳입니다. 일주일 훈련으로 프로 골퍼가 되는 세상이기도 하구요. 묘하게 불륜코드를 건들고 있는 지원과의 침대 에피소드는 <역전에 산다>의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상한 나라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신기하게, 자극적으로 다루려는 거죠.

드라마를 위해 준비한 갈등과 매듭은 너무 쉽게 풀립니다. 승완이 빠진 비현실적인 세상만큼이나 사건의 해결방법이 너무 간편해요. 어떤 이야기에는 당연히 도착지점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어떤 과정을 거쳤냐지 누구나 예상할만한 '도착' 그 자체가 아닙니다. <역전에 산다>는 매듭을 푸는데있어서의 '고민'을 한참이나 덜 한 영화입니다.

정작 이상한 나라의 주인공인 엘리스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장면은 많지 않습니다. 엘리스가 안내하는 볼거리에 묻혀서 엘리스가 실종되고 말았어요. 토끼를 따라 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고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야하는 이유도 석연치 않아요.

영화의 야심이 고작해야 신기한 세상 구경시켜주는 게 전부였단 말이군요. 엘리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단지 관광가이드였구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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