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 "나는 격렬한 도시의 삶을 원한다."



1923년 영국 리치몬드 교외. 버지니아 울프는 오늘도 집필중인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상들은 영화 속에서 곧 현실로 이어진다. 시대는 1951년.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빠져있는 로라. 둘째를 임신한 채 세살난 아들 리차드와 함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의 평온한 아침. 그러나, 평온함은 곧 희망없음의 다른 이름일지도. 영화는 그들의 평온함을 보여주면서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음악과 함께 그들에게 닥칠 불행을 예고하기도 하면서 2001년으로 그 방향을 돌린다.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 편집자 클라리사. 그녀는 옛애인이었던 리차드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린 엄마 로라에 대한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리차드는 지금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영화의 처음과 끝. 잿빛으로 가득한 강가에 울프는 신비스럽게 빨려들어간다. 그리고 그럼으로서 영화는 비로소 완성된다. '한적한 교회가 아니라 격렬한 도시의 삶을 원한다'던 그녀의 죽음은 과연 이 영화의 주제가 무엇이었을까를 의심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영화는 대중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통해서 또 그녀를 예찬하는 시를 통해서 우리는 그녀를 접했겠지만 영화에선 그런 그녀에 대한 환상을 너무나 신비스럽게 묘사함으로서 그녀에게 철저하게 거리를 두어 영화를 난해하게 만들어 놓았다. 즉, 버지니아 울프의 전반적인 삶을 이해하지 않고 이 영화를 본다면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절망감에 시달릴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콜키드만과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이 펼치는 연기의 앙상블은 충분히 그런 절망감을 어느 정도는 커버해 줄지도 모른다. 그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세 명의 주인공이 레즈비언이라는 시대를 뛰어넘는 성적코드로 통일될 때에도 시대를 뛰어넘는 충분한 동지애적 인 공감(그들 셋이 하나임을 보여주듯)을 보여주었으며 영화를 보는 내내 시종일관 절제되어 분위기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이 세 배우의 동지애적인 공감에 의해 만들어졌음은 물론이다.
"격렬한 도시의 삶을 원한다"는 말은 비단, 버지니아 울프 자신의 말만은 아니었을 터이니 로라와 클라리사에게 있어서도 그런 삶을 원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것은 곧 현대인의 여성성과도 연결이 되는데, 시골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여성은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택하지만, 1951년의 로라와 2001년의 댈러웨이 부인 클라리사는 자살을 하지 않는다. 대신, 로라로부터 버림받은 한 남성인 리차드만이 자살을 택할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모호하기만 하다. 리차드의 죽음으로 인해 격렬한 삶을 찾아 떠난 로라에 대한 경고를 통해 모성애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듯 하지만, 실은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으로 인해서 "해결할 수 없는 여성문제"라는 암울한 해답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로라와 클라리사의 만남을 통해서 이 영화는 또한 여성이 할 수 있는 역할들에 대해서 또다른 화두를 제기하는 듯 하지만, 그러나 이 영화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잔뜩 문제만 만들어놓고 해답은 없는 이 영화는 생각을 많이 하게는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오히려 우울해지고 답답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나는 격렬한 도시의 삶을 원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에 대사는 그녀가 죽으려 하는 순간 다시 한번 떠올라 잿빛 강물의 잔상으로 떠올라 답답해진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엔 찬사를 할 수도 야유를 퍼부을 수도 없다. 다만, 그녀의 자살이 주는 의미를 몇 십번이고 몇 백번이고 자꾸만 되새겨 보는 수밖에. 비록, 그에 대한 해답이 없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