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스파이] 의도적이고 각별한 엑기스


이 영화가 진부하고 재미없는 스토리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재미없음을 재미있게 만드는 비법이 한가지 있기는 하다. 각종 영화매체에서 흔히 다루는 재밌는 엑기스 부분만 쏘옥 빼서 보기. 이렇게 재미있는 부분만 빼서 보여준다면 세상에 재미없는 영화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이스파이도 이렇게 부분부분은 빛나는 명장면이 허다하지만, 내용전개의 당위성과 스토리의 진부함에 있어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운전사를 구하려다 결국엔 실패한 스파이 알렉스와 57승 무패의 말도 안돼는 전적을 자랑하며 정부로부터의 스파이제의를 정말 쉽게 승낙해버린 그들의 만남은 "인터넷화상대화"라는 기막힌 창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실제적인 만남은 첫 만남부터 삐그덕거린다. 무식하지만 코믹한 연기로 나름대로의 자기색깔을 그대로 유지한 에디머피는 켈리역을 통해서 그의 연기패턴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식상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에디머피만의 매력일 것이다. 일관성을 보여준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테니.
이 영화가 코미디인지 액션인지 모를 어설프고 맹맹한 영화가 되는 데에는 악당들이 한몫 단단히 한다. 알렉스와 켈리가 상대하는 악당들은 여느 영화에서처럼 두뇌회전이 빠른 인간들이라거나, 끔찍하거나 무섭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코믹하지도 않다. 아무런 색깔도 없는 악당들이기에 알렉스와 켈리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도 사실이다. 둘이서 웃기려 하지만, 그다지 많은 웃음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과 악당이 대적하는 상황에서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 약간의 미소만 지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을 자꾸 헷갈리게 한다. 알렉스가 최강의 신무기를 가진 적들을 체포하려 했을 때, 아군이었던 알렉스의 짝사랑 대상인 레이첼은 뜬금없이 나타나 적군의 편에서 알렉스를 위협한다. 권투시합 중이던 켈리는 인조장치에 의해 알렉스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는 그를 구하려 한다. 그러던 중, 다시 카를로스가 나타나 그들을 구한다. 이때부터 카를로스가 적군인지 레이첼이 적군인지 둘 다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혼란에 빠진다. <의도적>이라는 것은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 말도 안되는 상황을 설정한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나, 이 장면은 오히려 의도적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재미있는 장면이 된 것 같다. 이 와중에 레이첼은 또 사라져 버리고…
"여자는 조심해야 한다"라는 고전적인 명제를 살짝 곁들여 놓은 이 영화는 코미디와 액션을 잘 버무려놓기는 하지만, 스파이 영화로서는 볼 품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에디 머피와 오웬 윌슨이 연기를 못했거나, 또는 영화 자체가 주는 매력이 없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만, 두 주인공이 상대하는 적군이 너무나 밋밋한 캐릭터들로 짜여져 있어 영화가 주는 긴장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그래서 레이첼의 존재는 각별하다. 영화가 종횡무진 누비며 헷갈리듯이 레이첼도 정말 알렉스를 사랑한건지, 대체 이 여자는 왜 나왔는지조차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여자의 존재가 이 영화를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