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브]와 [큐브 2]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많은 공포 영화들의 속편이 그렇듯, [큐브 2]도 원작의 소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주장합니다. 이 영화에서 큐브들의 미로는 3차원의 입방체가 아닙니다. 테세렉트지요. :-)

이게 가능할까요? 머리 속에서 테세렉트를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차원 하나만 더하면 되니까요. 우린 테세렉트의 진짜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투영도를 그릴 수도 있고 부피를 계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에 진짜 테세렉트 미로를 만드는 건 사정이 다릅니다. 우리가 머리 속에서 설정한 4차원의 공간과는 달리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의 차원은 그렇게 평평하지가 않기 때문이지요.

[큐브 2]는 이런 문제점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캐릭터 중 한 명을 통해 '나도 그걸 알고 있어' 정도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에요.

덕택에 영화는 오리지널 [큐브]가 가지고 있던 수학적 매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습니다. [큐브]에는, 조금 미심쩍기는 해도 논리가 있었고 해결할 문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큐브 2]는 그런 게임의 매력을 처음부터 포기해버렸습니다. 이 영화에서 큐브의 미로는 거의 모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악몽의 공간일 뿐입니다. 유일한 단서인 숫자 60659에도 대단한 비밀은 없어요.

종종 영화는 기초적인 논리도 무시합니다. 마지막에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제리의 손목시계들이 대표적인 예죠.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 시계들이 모두 같은 시각을 가리킬 리가 없습니다. 물론 케이트에게 단서를 제공하는 그 시각을 가리킬 이유도 없고요. 반전이 있는 결말 역시 억지로 갖다붙인 것 같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캐릭터의 행동과 잘 맞지 않거든요.

드라마나 호러 영화의 측면도 조금씩 약발이 닳았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큐브 미로에 갇혀 한 명씩 죽어간다는 설정은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왔는데 아무래도 전편보다는 힘이 약하군요. 전편의 미친 형사에 대응하는 미친 사립탐정이 한 명 설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전편만한 긴장감은 없습니다. 난도질 호러 영화의 공포도 부족하고요. 종종 영화는 어떻게 캐릭터를 죽여야 할 지 몰라 스토리 자체를 포기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큐브 2]에는 자기만의 장점이 있습니다. 전편의 매력이었던 수학적 논리는 부족하지만 [큐브 2]의 미로는 전편이 갖추지 못한 초현실적 마술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간이 뒤틀리고 평행 우주가 갈라지며 중력이 뒤틀리는 이 미로는 굉장히 흥미진진한 놀이터입니다. 종종 영화는 아무 생각없이 유쾌한 모순 속으로 주인공들을 집어던집니다. 살인마는 같은 희생자들을 계속 살해하고, 종종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마주치며, 다른 큐브로 달아나는 도망자가 다음 큐브의 추적자를 도리어 공격하는 식이죠.

[큐브 2]의 결말은 보다 설명이 많은 [큐브 3]의 제작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과연 3편이 나올 수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차원을 하나 더 더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기타등등

과연 큐브 안에 갇힌 사람들은 화장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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