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이디어맨입니다. 독특한 소재를 찾아내고, 남다른 표현 방법을 모색해 금새 일을 해치워 버립니다. 게다가 그는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또한 달변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떤 사람은 지지를, 어떤 사람은 비난을 보냅니다. 한 때는 악어였고, 한 때는 야생동물이었으며, 또 한 때는 나쁜 남자였던 그는 바로 김기덕(A) 감독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 좀 달라졌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새 영화에서 한층 너그러워진 것이죠. 나이가 들면 세상을 관조하게 된다는데 그 역시 그런 걸까요. 영화는 인간의 '유년, 청년, 장년, 노년'의 시간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의 생동감, 대책없이 작열하는 여름의 정열, 모든 게 무르익어가는 가을의 결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 확실히 그의 시선은 느슨해졌습니다.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있던 그의 영화는 이번엔 그 모든 것에 비껴 서 있습니다. 그 누구도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며, 만물은 순환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진리에 가깝습니다. 우주의 시간은 직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속에 변화하고 또 존재하는 것이고, 사람도 자연도 그 일부니까요. 그는 단지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한 것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기덕 감독 특유의 분노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젊은 스님의 참지 못하는 욕망에, 주먹으로 꽉 쥐고 놓치 못하던 피 묻은 칼에, 형사들의 권총놀이에, 내재된 그의 분노는 언뜻 언뜻 스칩니다. 무엇보다 그는 여전히 ‘성악설’을 지지합니다. 때문에 그에게 수양이란, 잠재된 착한 심성을 길러내는 과정이 아니라 외부의 가르침이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후천적으로 쌓아올려지는 것이죠. 이전에 그의 영화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이번 영화 역시 그 사실엔 변함없습니다. 다만 이전의 영화들이 악한 인간 본성에 대한 확인의 과정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반성의 과정인 셈이죠.

이 영화는 무엇보다 해외영화제 구미에 딱 맞습니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동양적인 배경에 '도'를 이야기하고 반가사유상과 풍경소리, 동양의 미의식이 담긴 붓글씨까지. 디테일한 요소 하나하나가 'Made in Orient' 를 지향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이를 표현해낸 그의 풍부한 미적 감성은 높이 살 만합니다. 화면들은 시종일관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습니다. 물론 단 하나의 공간에서 모든 사건과 이야기들을 꾸려낸 솜씨도 좋습니다. 인류 보편적인 메시지도 아주 쉽고 편하게 공감할 수 있구요.

하지만 이 영화는 쉼표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영화에선 더 나은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오겠죠. 그의 다음 영화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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