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을 정리해 조금은 현학적으로 글을 올립니다.

순간 속에 영원이 깃들어 있다는 감독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자유를 뜻하는 “와호장룡”과 비교되는 것을 거부한다.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보시기를…
여기에는 유한[인간]과 무한[시공간]의 대립이 아닌 유한이 무한에 참여하는, 유한 속에 무한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보게 한다. 철학적인 유한과 무한의 이원론적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 속에 무한이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유한과 무한의 대립이 아닌 대조/대견을 말하자면 이렇다. 순간/영원, 유한/무한, 인간/신, 자연수/무리수[쉽게]…..

우선 이 영화의 동양적 여백을 보자,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시간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호와 상징을 생각해보자.

■ 무명과 장천의 결투
▷떨어지는 빗물 – 평소 오감이 느낄 수 없던 순간 속의 수많은 움직임.

우선 이것을 숫자로 해석하자. 우리가 일상에서 발견하는 숫자는 1,2,3… 한,두,세 물방울…이다. 그런데 영화는 고속촬영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는가 ? 떨어지는 물방울과 단순한 부숴짐이라는 일상적 기호에 멈추지 않았다. 1,.. ⅓,…, 1½,…2,.. 그 일상 속에 깃든 무한이라는 철학과 종교적 기호는 나를 이런 식으로 멈추게 했다. 어~어라 !!!


■ 사막과 동양적 산수화
▷모든 것이 정지한듯하지만 시간의 한 점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고독한 무사와 관객

이것은 갠적으로 좋아하는 상징이지만 이것을 나는 지금껏 영화로 보는 것은 무척 싫어했다. 이 상징은 주로 시공간이 정지된 미술분야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또 한번 나를 놀라게 했으니. 무한한 자연[사막, 산수화] 속에 무인이 등장하고 지그시 눈을 뜨고 그 무한을 바라보고 있다. 무한한 자연 앞에 유한한 인간이 그 무한에 참여하려는 것이다.

■ 파검과의 대결 [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담긴 명장면 –물,호수 ]
시간의 정지와 그 흐름 – 수면의 경계를 보는 카메라의 눈, 물속에 잠긴 카메라
흔히 물속에서는 시공간이 정지된다고 한다. 우리의 오감이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수면을 들락거리는 칼의 경계에 시간의 정지와 흐름이 놓여있다.
시간이 멈춘 물속에서 산수를 바라보니 지극히 고요한데 그 수면을 날라다니는 무사들이라.

이 장면에서 칼이 수면의 경계를 들락거리는 장면이 의도적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듯하다. 누가 칼을 쥐고 있는 것인지, 왜 칼이 물 속을 들락거리는지 그 이유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장면에는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영화의 주제의식이 뭉쳐 있다. 물론 백주대낮에 와이어 액션을 사용해서 그런지 어슬픈 장면이 눈에 띄긴 하지만…

■ 파검과 진시황의 결투
▷왕궁을 치장한 거대한 휘장이 한번의 칼부림에 흘러 내린다. 너무나 천천히, 그리고 고요하게.

==이 장면은 순간/영원, 유한/무한이 극명한 대조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다. 찰나지간의 칼부림(순간)을 따라 어떻게 무한(영원, 휘장)이 순간을 포옹하는지를… 지긋시, 느릿하게, 포근하게, 그러나 장엄하게 무한은 유한을 싸고 돌며 흐르는데……


시간이라는 주제로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허리우드식 고속액션 속에 사라진, 놓쳐버린 이 세계의 순간들, 우리는 이 순간을 놓치고 살게끔 서구문화로부터 주입을 받은 것은 아닐까 ? ( 황금만능주의는 정말로 황금이 만능이라서 생겨난 것일까 ? 아니면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이럴테면 사회의 구조적 병폐나 민족성 혹은 사회문화는 기호가 … 한국이 왜 월드컵 4강에 갔을까 ? )

끝으로 이 영화는 역사성에서 볼 때도 그런 순간과 영원을 느끼게 한다.

왕을 암살하는 것이 그 숙명의 영원한 과제임에도 순간의 깨달음이 파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으니… 여기에서 나는 무한이 유한에 참여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가 매사에 나름의 결정을 내리고 살지만, 때론 나를 부인하고 살아야 될 때가 있다. 파검은 자신의 삶에서 순간이 영원이 되는, 유한이 무한이 되고 무한이 유한이 되는 깨침을 맛봤다. (내 말을 어슬픈 윤회로 본다면 그 사람은 “차원”이란 말을 모르는 사람이다. 개체의 순환이 아닌 차원의 전이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파검의 결정이 중국을 폄하하려는 일부 관객에게는 알량한 양심인 듯 보이지만, 이것은 진시황에 대한 무지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의 논리적 도식인 거짓-추론-진실의 모양새에서 막시즘적 정반합의 도식을 원한 이들에게는 비약이 필요하겠지만, 장이모 감독은 비약되신 역사적 진실을 택했다고 나는 본다. ( 역사적 진실이 궁금하신 분은 중국의 고전 “여씨춘추”를 통해 진시황 삶의 배경지식을 더해 보시기를… 인간성이 아닌 고독한 지식인의 광란을 느끼면 정답임. )

진시황의 역사를 순간이 아닌 영원으로, 다시 순간으로 느낄 수 있는 삶의 체계와 깊이를 더 할 수 있게 이 영화를 감상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