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가족> 바람나면 살맛나나?
- 소통이 단절된 가족, 그들의 발칙하고 슬픈 이야기

국내 최초 인터넷 펀드 투자자 모집으로 화제를 모았던 영화 <바람난 가족>(감독 임상수, 제작 명필름) 시사회 참가를 위해 스카라 극장을 찾았다. 이제 영화계도 아파트 분양처럼 다 만들어 놓고 투자를 받는 시대가 도래한 것인가?

"<바람난 가족>을 소위 '떡' 영화 맞냐구 하는데 맞습니다, 맞고요"
시사회가 시작되기 전, 밝은 천연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임상수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을 흉내낸 이 한마디로 관람석에 한바탕 웃음을 자아냈다.(여기서 '떡'이란, 성관계를 갖는다는 의미의 속어로 미국 방송의 성인시트콤에서 'bang'이란 표현으로 자주 등장한다.)

<바람난 가족>의 장르를 굳이 구별한다면, '섹스 휴먼드라마'라 할 수 있겠다. 임 감독은 전작 <처녀들의 저녁식사>에 이어 '섹스나 여성의 주체성'을 발칙하게 그러나 슬프게 그려내고 있다.

<바람난 가족>은 한 마디로 집안의 며느리이자 한 남편의 아내가 겪는 솔직한 삶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버려진 개가 이들 가족사에 불어닥칠 위기에 대한 복선의 역할을 하며 시작된다.

우선 <바람난 가족>의 구성원을 살펴보자. 가족 중 아이와 함께 유일하게 바람나지 않은 사람이자 술로 시간을 허비하는 중증환자 시아버지(김인문). 그는 죽기 직전에도 끝까지 술과 담배를 찾는다. 회갑을 넘기고 친구를 만나 바람난 시어머니(윤여정). 선천적으로 바람끼를 타고난 남편 영작(황정민), 부부의 입양아 수인 그리고 지운(봉태규)과 바람난 아줌마 호정(문소리)이 한 가족을 이룬다.

지난 주까지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영화 <싱글즈>의 나난처럼 <바람난 가족>의 여주인공 호정 역시 섹스에 솔직하면서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캐릭터이다. 발레단의 단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호정은 자신의 삶에 순응하면서도 주체적이다. 남편과 섹스 후, 자위를 통해 오르가즘을 느끼는 그의 모습에서 구차함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호정의 남편 영작은 속물 근성과 이중인격을 가진 남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결국 아이까지 죽음으로 내몰고 마는 변호사다. 영화 <소름>의 용현과도 같은 그의 폭력성은 호정에 의해 심판받는다.

대부분의 폭력 남편들이 그러하 듯 구타 뒤에 "아파?"라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가부장적인 남자를 대표한다. 만약, 이런 식의 남편에게 적당히 길들여진 여자라면 평생 구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주체적인 인물 호정은 당연히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

미국 방송의 성인시트콤에서 여자가 'It's over'(끝이야)라고 말하고 나면 그 즉시 헤어진다. 오랫동안 심사숙고 끝에 내뱉는 말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운과 바람난 아줌마 호정 역시, 불륜 끝에 돌아오려는 남편에게 "당신은 아웃이야"라고 거침없이 내뱉는다. 마치 <싱글즈>의 동미가 미혼모로서 당당히 "내 아이야"라고 했던 것처럼. 필자에게 이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람난 남편에게 호정은 "밤 늦게 얘기 들어줄 사람이 있으니까 나보다 낫네"라고 비아냥 거리며 남편의 구타로 부러진 손에 기브스를 한 채 이웃집 지운을 찾는다.

몸이 변했다는 표현이 적당할까? 결혼 전보다 결혼 후에 남편과의 잠자리가 더 적었다는 호정은 이제야 온전히 자신의 몸을 받아 줄 상대 인 지운을 만나 오르가즘을 느끼며 삶의 활력을 찾는다.

옆집에 사는 지운은 이웃집 아줌마인 호정을 훔쳐보며 소통이 단절된 가족안에서 배회하는 그에게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남편의 외도로 아이와 함께 지내던 호정은 어느날부터 지운과 영화관에 가거나 산에 오르게 되며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호정과 지운의 관계를 알게 된, 역시 바람난 시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호정에게 선택하게 한다.

시어머니: 몸이 원하는대로 사는 게 맞지. 내가 맘 변했단 얘긴 수없이 들었어도 몸 변했다는 얘기는 처음이다. 나, 요새 처음 오르가즘이라는 걸 느껴. 얘, 인생 솔직하게 살아야 되는 거더라.

<바람난 가족>에서 인상적이었던 또 다른 장면은 호정이 지운과 관계를 가질 때이다. 호정은 서툰 지운의 행동에 처음 웃음소리를 내다가 이어 신음소리로 바뀌고 나중에는 울분을 토해낸다. 지상에서 가장 슬픈 호정의 섹스.

영화 <바람난 가족>은 최근 현대문학에서 자주 다루어 오던 소통이 단절된 현대인의 자화상을 한 가족을 통해 심각하게 그리고 있다. 호정역의 문소리는 전작 <오아시스>의 뇌성마비 장애인에 이어 희생된 아이를 못 잊어 산을 오르며 절규하고, 지운과의 섹스 장면에서 울부짖는 등 이전보다 한층 더 물 오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주연배우 이 외에도 감초연기를 잘 해준 김인문, 윤여정과 성지루 등 의 개성파 배우가 코믹한 연기와 발칙한 대사로 주인공들이 끌어가지 못한 이야기를 잘 연결해 영화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전작에 이어 대담한 연출을 시도한 임 감독의 <바람난 가족>이 얼마만큼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더 두고볼 일. 아울러, '베네치아 영화제'에 출품된 <바람난 가족>이 국제 무대에서는 또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바람난 가족>은 오는 8월 14일 개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