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는 요리솜씨가 아주 좋으십니다. 때문에 제가 어릴 적, 아빠의 술자리 마지막 코스는 대부분 우리집이었습니다. 엄마는 손사래를 치시다가도 반갑게 맞이하셨구요. 호두로 모양을 낸 곶감부터 치즈와 햄이 다소곳이 앉아있던 까나페까지. 그리고 항상 준비되어 있는 메뉴중엔 그 해 여름철에 만들어 둔 잼이 있었죠.

<스위트 알라바마>는 보기전부터 제 취향이 아닐 것이라 직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리즈 위더스푼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지친 오후에 활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역대 로맨틱 코미디 사상 최대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말에 보러 갔습니다. 아, 인간의 상상력이란 왜 이다지도 빈약한 것일까요. 영화는 이름 그대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그래도 이 영화에 매력이 있다면 그건 남부와 북부, 두 세계의 갈등을 재치있게 묘사해 낸 부분입니다. 특히 남부에 아직도 남북전쟁 기념행사가 남아있는 모양인데, 전투 재현 장면이 재밌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가서 꼭 보리라 생각했습니다.

잼은 같은 재료라도 만드는 방법에 따라 잼(jam)과 프리저브(preserve)로 구별됩니다. 잼은 과일을 으깨서 형태가 남지않게 조린 것이고, 프리저브는 과일의 형태가 있게 조린 것이죠. 일반적으로 프리저브를 상품으로 칩니다. 마멀레이드는 프리저브의 일종인데 내용물을 가늘게 썰어서 설탕에 조린 것이구요. 물론 모든 과일이 잼이 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펙틴과 산, 당분의 함량이 잘 맞아야 되죠.

7년만에 고향인 알라바마로 돌아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속으로 떠난 멜라니. 그녀에게 좌충우돌 사건들이 한참동안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녀가 실의에 빠지는 일이 생기죠. 이 때 맥없이 앉아있는 멜라니 뒤로 과일을 손질하던 어머니가 말합니다. 지금 손질하고 있는 이 과일은 겉으로 보기엔 상해서 버려야 될 것 같지만 다 쓸모가 있노라고, 상한 과일은 더 맛있는 잼을 만들 수 있다고 말이죠. (상한 과일이 더 맛있는 잼이 된다는 건 맞는 말입니다. 대개 벌레로 인해 상한 과일은 당도가 높은 것들이라 벌레들이 먼저 시식한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멜라니는 상처 투성이의 과일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분명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녀는 훨씬 더 맛좋은 잼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당분뿐인 그녀를 맛좋은 잼으로 완성시켜주는 건, 적당한 펙틴과 산을 지닌 스위트 홈 알라바마의 가족과 친구들이구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오래된 것들입니다. 제게 '잼‘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의 ‘마들렌’ 과자이기도 하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속 ‘체리향기’이기도 합니다. 그 속엔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준 기억들이 숨어 있으니까요. 이제 엄마는 더 이상 잼을 만들지 않고, 아빠를 찾는 손님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변화들이 우리를 스쳐지나갔겠죠. 이제 달콤한 집의 기억은 잼 속에서 굳어진 과일 화석처럼 남아 있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옵니다.
아, 이럴 때 따뜻한 스콘이 있다면 좋을텐데. 잼과 가장 어울리는 음식은 영국식 빵인 스콘이거든요. 거기에 다홍빛 감도는 홍차 한잔이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죠.

Home, sweet home.
눈을 감으면 잡힐듯한 기억들.
당신의 sweet home은 어느 곳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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