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있다면, 이 영화를 보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공책을 하나 마련해서 '피해갈 영화'라고 쓴 다음에, 그 목록 첫 번째에 이 영화를 적어 넣고 싶다. 하지만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애인이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안 남자가 복수를 하러 간다." <돌이킬 수 없는>은 이 비극과 복수극을 역순으로 진행시켜 나간다. 그러니까 <메멘토>처럼 결과로부터 시작해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 연출법은 효과적으로 보인다.

영화는 초반부터 불편한 크레딧과 카메라워크로 여는데, 이는 주인공 마르쿠스(뱅상 카잘)의 심기를 반영한 것이다. 극 중 인물의 심리상태와 카메라 심장 박동을 맞추려 노력한 이 장면들은 구토가 날 정도로 어질어질 돌아가고, 싸이렌이 울리고, 마르쿠스가 바라보는 대상과 세계는 지옥도가 된다. 음습한 밀실 게이바에서 비역질과 마약을 하는 동성애자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인 소화기로 사람의 얼굴을 수차례 내려쳐 으깨지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장면 등, 영화의 초반은 매우 거칠고 불친절하다.

영화가 계속될수록 카메라의 광분은 덜해진다. 흔들림이 줄고 초점을 맞춰간다. 그러나 초점이 맞춰질수록 관객의 정신적 외상은 더해진다. 카메라가 물고 늘어지는 임신한 알렉스(모니카 벨루치)가 10여 분간 성폭행 당하는 신은, 구역질난다. 극장 출구가 가까이 있었으면 그대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그 동안 온갖 포르노를 즐겨왔대도 그 장면을 즐기고 싶진 않다.(그러나 그 장면에는 의심할만한 그 어떠한 연출자의 관음적 시선도 들어있지 않다. 거기에는 다큐적 고발이 함께 한다.)

세상은 점점 종말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영화의 서두는 그 종말에 대한 은유이다. 이처럼 되기까지의 이유를 <돌이킬 수 없는>은 폭력에서 찾고 있다. 영화의 끝 장면에 만나게 되는(그러니까 시간 순서적으로 첫 장면인)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던 여자. 우리는 과연 그 때의 그녀로 돌아갈 수 있을지.

세상의 저편에선 지금도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이에 대한 염려가 담겨있는 <돌이킬 수 없는>은 인류 종말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읽힌다. [★★★☆]

※ 덧붙이기
포스터는 다소 선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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