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배에서 지평선 너머로 보이는 육지를 바라보며 자기만의 고독에 쌓인다. 12월 1일 개봉을 앞둔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1989년 깐느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1990년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영화 '시네마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98년도 작품이다. 190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시대적 배경으로 육지를 한번도 밟아보지를 못하고 대형기선에만 살아온 천재 피아니스트의 삶을 그린 복고풍 스타일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구성방식은 역 기법을 선택한다. 트럼펫 주자 '맥스'가 악기점에서 트럼펫을 팔려고 할 때 전설적인 '나이틴 헌드레드'의 피아노연주음반을 발견하면서 그와 지냈던 추억을 회상하는 연상작용을 통하여 극의 요소를 극대화시킨다. 1900년 1월1일 20세기의 첫 시작과 동시에 나이틴 헌드레드는 세상의 빛을 보고 바다 위의 배 안에서 그는 천재적인 피아니스트의 감각으로 트럼팻 연주자 맥스와 함께 지내면서 생기는 일들을 중심으로 스크린 속에 담아냈다.

주인공 나이틴 헌드레드 역을 맡은 팀 로스는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빈센트 앤드 테오'라는 작품에서 빈센트 반 고호 역을 맡으면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미국 진출 작 '저수지의 개들'을 통해 그후 '펄프픽션'이나 '롭 로이' 등에 출연하여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까지 노미네이트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포룸'이라는 영화에서 벨보이 역할을 맡으면서 많이 친숙하게 됐다. 최근작품으로는 '빵과 장미' '혹성탈출' '머스킷티어' 등에서 열연한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순수하면서 열정적인 신비스러운 피아니스트 역할을 100%충분히 소화해 내고 있다.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이자 이 이야기의 진행자이며 트럼팻 연주자인 맥스투니역을 맡은 프롯 테일러빈스는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의 'JFK'나 '내츄럴 본 킬러'등에서 출연한 것을 미루어 보건데 그의 연기력은 이미 입증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야곱의 사다리' '미시시피 버닝' '엔젤하트' 그리고 최근작 '너스베티'까지 다양한 연기력을 구사한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에서는 나이틴 헌드레드와 더불어 음악과 인생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는 메신저로써 없어서는 않되는 인물을 존재감 있게 나타내고 있다.

그밖에도 실제 미국 재즈의 창시자로 불리웠던 재즈의 제왕 젤리 롤 모튼 역을 맡은 클라렌스 윌리엄스는 미국뉴욕 할렘출신이면서 동시에 뮤지션인 아버지의 영향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제 젤리 롤 모튼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임포스터' '레인디어 게임' '장군의 딸' '트윈픽스' 등의 굵직한 작품에서 얼굴을 비춘 그의 연기인생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흑인 특유의 카리스마 연기를 선보인다.

각본과 감독을 맡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번 작품이 첫 번째 영어 버전 영화이다. 시네마천국을 통해 이미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각층에서 많은 팬들을 확보한 감독은 1990년 대 이후부터는 이탈리아 클래식 영화 복원작업과 마피아에 반대하던 판사 지오반니 팔콘의 살해 1주년을 맞아 TV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 시작한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감독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는 듯한 느낌이 주인공 나이틴 헌드레드를 통해 볼 수 있다.

음악을 맡은 엔니오 모리꼬네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영화음악의 대부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로마출신으로 '벅시' '언터처블' '미션' '천국의 나날들' '러브 어페어'로 아카데미에 네 번이나 노미네이트 되고 '언터처블'과 '시네마천국'으로 아카데미상을 두 번 수상했다. 그밖에도 '원스 어폰 어 타임인 아메리카'나 '시티오브 조이' '햄릿' '사선에서'등의 대작 등에서 이미 그의 능력은 인정받은 바 있다. 지금까지 400여 편의 영화음악을 맡았고, 해마다 영화음악 베스트 100속에 10곡 이상의 음악이 그의 음악일 정도로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영화음악의 거장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진가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사회모습을 보여주면서 래그타임, 시카고, 캔사스 시티, 스윙, 비밥 등의 미국 재즈음악의 역사도 한눈에 볼 수 있다. 대형항해선의 웅장함에 엔니오 모리꼬네 특유의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가미되어 영화의 무게를 실어준다. 미국의 CNN방송은 "극중 나이틴 헌드레드와 젤리롤 모튼의 선상 피아노 대결은 이 영화의 가장 스릴 넘치고 매혹적인 장면이며 환호성을 치고 싶었다"고 피력했는데 아마도 실제로 두 천재 피아니스트의 대결은 자칫 지루할 수 도 있는 영화에 볼거리와 재미를 배로 높여주는 효과를 제공한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바다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에서 살았던 한남자의 이야기다. 바다가 고향이고 배가 집이었던 천재 피아니스트의 인간적인 내면적 고독에 초점을 맞춰 우리들의 삶을 좀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따뜻한 휴먼대작이다.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은 떠도는 배처럼 외로운 존재이며 동시에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고 흐르는 물과도 같다"라는 말이 상기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