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이런 도발적인 이론도 있답니다. 무엇이냐 하면 말이죠. 모든 여성은 레즈비언이다, 라는 것이죠. 한번 더 비틀어본다면 ‘여성 = 바이섹슈얼리티’로 치환 가능합니다. 정확한 출처는 제공할 수 없구요(죄송^^) 게이 엑티비스트로 유명한 문화평론가 서동진씨의 입을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강연에 참가했던 모든 여성들은 일견 동의했습니다. 물론 명백한 이성애주의자들에게는 불편하고, 억지스런 강변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자, 돌이켜보세요. 남성과 남성끼리의 우정과 여성과 여성끼리의 우정의 속성을 말예요. 뭐가 달라도 다른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여고문화로 상징될 수 있는 감수성 짙은 10대 소녀들의 우정.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효신과 시은의 감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음’으로 나, 몰라라 등 돌릴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이름의 효신과 시은의 존재가 기억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 않을까요?

흔히 퀴어영화로 규정되고 있는 수많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성적 코드에 의해 규정짓지 않는다면 생각보다 그 범위는 상당히 광범위해집니다. <델마와 루이스> 같은 경우는 상처받은 여성, 즉 사회적인 범주에서 소외자인 ‘여성’을 버디무비 형식으로 내세웁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나름의 공통분모를 지우며 그 결집력을 키워갑니다. 영화 속 라스트 신은 이 같은 함의를 긍정하고 있으며 우정과 사랑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죠. <바운드>가 <델마와 루이스>와 비슷한 맥락에 위치하면서도 또렷히 ‘퀴어’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이유는 섹스 신 때문입니다. 때문에 성적 장치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는다면 우정, 이상의 감정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우정’을 키워드로 내세우고 있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잇지와 루스의 우정은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루스의 남편을 유쾌하게 ‘요리’하는 잇지의 도발적 행위를 단순한 우정의 감정으로 본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요? 적어도 제게 있어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여성들의 연대의식을 통해 레즈비언 성향을 그려낸 퀴어영화로 가슴깊이 남아 있답니다.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는 이성애로 살아온 유태인 제시카를 통해 얄궂은 모험을 감행케 합니다. 시작은 이러하죠. “괜찮은 남자들이 너무 없어. 매력 있는 여자들은 많은데 말야” 요 일상적 고민은 ‘그럼 여자를 사귀어볼까?’로 전이됩니다. 쉬운 일은 아닐터지만 자유분방한 상대를 만난 ‘덕분’에 제시카는 우정 이상의 감정을 시도하고, 달성하기에 이릅니다. 제 범주에서 시작된 편파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상당부분 ‘그녀들의 감정’에 동감했습니다. 종교, 국가, 계층적 지위를 떠나 ‘나같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구요. 이것은 이성애냐, 동성애냐 하는 이분법적 경계 세우기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성적 문법체계 안에 가둬둘 수 있다는 거지요. 제시카 또한 헬렌이 아니였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체제를 위반한다는 것이 범인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일이거든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의 두 여인은 맘 잘 맞고, 함께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즐거운 연대감을 ‘사랑’으로 키워나갑니다. 이것은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준 뜻밖의 행복이 아닐까요. 물론 영화에서 그들은 ‘성적 차이’로 헤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이성애 커플에게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례에 불과하며, 결코 이상적으로 그려내지 않은 균형있는 현실감각을 보여줬다고 생각하구요. 영화를 보면서 특히나 버디무비 형식의 여성관계는 참으로 복잡미묘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그 감정의 완급을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에서는 과감하게 펼쳐내며 ‘우정 이상의 만남’의 커플을 우리에게 소개했습니다.

정말 여성들은 우정 이상의 감정으로 내 친구야,라고 부르고 있는 걸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여자를 잘 모르는 남자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고 싶군요. 당신들이 질투할 대상은 꽃미남이 아니라, 내 여자친구의 ‘여자친구’라구요. 어쩌면 당신과 함께 한 시간보다 여자친구와의 만남에서 더 많은 웃음과, 추억을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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